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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과 잡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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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30면

해마다 연말의 가장 큰 휴일은 크리스마스다.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가 동서양에 걸쳐 명절로 자리를 잡았고,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간에 성탄의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예수의 탄생 연도와 날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5세기 초에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그 탄생 일자에 대한 여러 가설을 칙령으로 폐기하고 12월 25일로 단일화해 확정지었다. Christmas를 X-mas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말의 희랍어 첫 글자인 X에 중세에 사용하던 영어의 고어 messe(미사)를 덧붙인 것이다. 곧 가장 큰 축제인 성탄절에 예배를 드린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예수의 등장은 가난하고 병든 자, 억눌린 자들을 위한 기쁨의 복음이었다. 이 뜻을 잘 전하는 일을 한 사람이 산타클로스로서, 그의 이름이 라틴어로는 상투 니콜라우스였다. AD 270년 경 소아시아 지방 리치아의 파타라 시에서 태어난 그는, 강렬한 자선심으로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이들을 돌봤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꿈이 되는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의 유래다. 이렇게 이 명절은 단순히 뜻깊은 축제의 날에 그치지 않고, 약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랑의 정신, 박애주의(博愛主義)의 구현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기희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의 내용을 봐도 성탄은 무고한 희생과 더불어 시작된다. 메시아의 출현을 두려워한 분봉 왕 헤롯은 베들레헴의 2세 이하 영·유아를 모두 학살하고, 예수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의 통곡 속에서 태어난다.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 영혼을 구원한다는 엄청난 사명의 뒤편에, 그 사명의 성취를 부양하는 말 못할 희생이 숨어 있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는 복음을 기뻐하는 축일(祝日)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슬픔을 기억해야 하는 기일(忌日)이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절기로서가 아니라,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 돕고 베풀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절기로, 사려 깊고 올곧게 크리스마스를 맞아야 하는 이유다. 비단 종교의 차원에서 만이 아니다. 인류 역사의 도처에는 큰 역사적 성과가 있는 곳에 언제나 그와 같은 희생이 함께 한 사례가 즐비하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상징되는 서구 민주주의, 그리고 4·19 의거로 시발을 알린 한국 민주주의의 성립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시민의 생명이 희생되었는가를 살펴보면, 이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인류 예술사에 수발한 이름을 남긴 예술가의 생애에는, 그 뒤안길에 남모르는 아픔과 슬픔이 잠복해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베토벤의 선율에서, 고흐의 화폭에서, 두보의 방랑시편에서, 우리는 그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대가로 지불하고 거둬들인 예술적 수확을 만난다. 『모비딕』은 한 세기가 지나 세계적인 고전이 되었지만 작가 허만 멜빌의 생전의 삶 가난하고 외로웠다.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의 사정도 그와 다르지 않아서, 지금은 불후의 명작이 된 그 작품의 혹평들을 당대에 직접 감당해야 했다. 자신만이 축조할 수 있는 예술세계를 위해 모든 일상적 가치를 도외시한 예술가의 생애, 그러한 자기희생의 예술혼이 없었더라면 21세기의 인류 예술사는 얼마나 빈곤한 것이 되었을지 모른다.


6·25동란 시기를 다룬 재미 한인 작가 김은국의 소설 『순교자』는 군 정보당국의 조사에 의해 전쟁 중 목회자의 순교 문제를 검증하는 이야기다. 공산군의 총구 앞에서 신앙 양심을 배신하고 살아남은 신 목사가 있고, 배교를 거부하며 순교를 실천한 12명의 목사 곧 순교자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총을 겨눈 자들은 순교를 각오한 신 목사만 자격이 있다고 살려주고, 신앙을 버린 12명의 목사를 사살했던 것이다. 신 목사는 이를 숨기고 스스로 배신자의 너울을 둘러쓴 채 산다. 전쟁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실존, 그리고 한 사람이 지켜야할 인간적 위의(威儀)를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미국 주류문학에서도 인정받는 작품이다.


항일 애국지사 가운데 우국충정을 두고 말하자면 누구나 백범 김구 선생을 떠올린다.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그 곤고한 길을 걸었다.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또한 항일 저항운동에 젊은 날부터 몸을 던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지막은 전혀 달랐다. 우남은 건국 대통령으로 권력의 첨단에 섰지만 불행한 하야와 망명을 선택해야 했고, 백범은 암살로 불우하게 생애를 마쳤으나 오늘에 이르도록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 백범(白凡)이라는 호는 백정과 범부의 첫 글자를 따 온 것이니, 선생은 그렇게 스스로 낮은 자리를 찾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온 나라가 국정 농단 사태로 이렇게 시끄러운데, 이 와중에서 자기희생의 수범을 보이며 국민의 신망을 모을 수 있는 지도자가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한 희생정신의 모범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역사는 또한 위기의 시대를 이끌 잠재력을 양성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희생의 길에 대한 국량(局量)과 자신을 버리는 결단은, 낮고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예수가 말구유, 곧 말죽통에서 났던 것이다. 나라가 이토록 어려울 때에 국익 우선의 큰 틀을 생각하고, 정략적 계산이나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앞으로 나라를 이끌 후보자로서 소위 잠룡(潛龍)들이 이 자기희생의 정신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잡룡(雜龍)에 그칠 것이다.


김종회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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