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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일방외교' 한발 물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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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힘에 기초한 '일방주의 외교'(unilateralism)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3일 "부시 대통령의 남은 18개월간 외교는 출구전략(exit strategies)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처럼 많은 비용이 드는 적극적인 개입보다 예산이 적게 드는 외교적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올 가을부터 본격화될 차기 대선전 때문이다. 아울러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밀어붙였던 신보수주의 외교행태를 견제하는 의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도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달라지는 미국 태도=미국은 이라크를 출발점으로 중동 전체에 '민주화 도미노'현상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년으로 예정된 자유 총선거만 치르면 이라크에서 가급적 빨리 빠져나오는 게 목표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 언론은 이라크에서 미군 병사들이 살해될 때마다 이를 속보 형식으로 보도하고 이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군의 공백은 다국적군, 혹은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군으로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또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라이베리아에 대해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듯한 기세였으나 입장을 바꿔 서아프리카 국가들 및 유엔과 함께 평화유지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불과 한두달 전까지 보이던 강경한 태도가 많이 누그러지고,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대북 온건파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듯한 양상이다.

◆목소리 높이는 의회=이라크전과 관련, 상.하원과 민주.공화 양당 모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의원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공화당의 중진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제시한 중동 평화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표시했다.

존 워너(공화) 상원 군사위원장도 최근 미국의 아프리카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공화당 의원들도 재정과 외교분야에서는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개별적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지적했다.

◆결국 재선이 문제=외교전문잡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의 모이제스 네임 편집장은 "모든 외교정책 결정과 구상은 대선 과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영된다"면서 "백악관의 주된 관심은 미국 유권자들이며 미국 이외 세계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것은 다음 차례"라고 말했다.

헤리티지 재단 발비나 황 연구원도 "미국 선거전에서 외교문제는 항상 주요 이슈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로선 외교적인 논란거리를 가급적 만들지 않으면서 국내 문제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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