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1심 결과 나올 때까지 탄핵 심판 연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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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3시26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 도착한 이중환(57)·채명성(38)·손범규(50) 변호사가 1층 민원실로 향했다. 이 변호사가 손가방을 열고 서류 세 뭉치를 꺼냈다. 각각 ‘답변서’ ‘이의신청서’ ‘변호인선임신고서’라는 문구가 앞 장에 쓰여 있었다.

대통령 대리인, 헌재에 답변서 제출
“탄핵 사유 지극히 일부분만 인정
세월호는 직접 책임질 일 아니다
모든 쟁점 사실·법률관계 다툴 것”
야당 “사과 때 인정한 사실도 부인”

이들은 9분 뒤에 지난 9일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인단으로서 헌재가 요청한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어 헌재 2층 브리핑룸으로 향했다. 대표로 이 변호사가 앞에 섰다. “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법률을 위반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탄핵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답변서의 결론부터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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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국민 주권 침해 부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법률 해석상 성립하지 않는 부분이다.”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를 모두 부인하나.
“그렇다.”
일괄적으로 모두 부인한다는 취지인가.
“지극히 일부분만 사실 관계를 인정한다.”
대통령이 탄핵 심판 첫 변론 기일에 출석하나.
“출석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 변호사는 박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해서도 “(헌재 심판 과정에서)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검찰의) 공소장에 (관련 내용이) 없어서 공소장만으로는 특정할 수 없고, (혐의를 입증할 만한 내용이) 일부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이 대통령을 공범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공소장에 빈 공간이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해선 “세월호 참사는 불행한 일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거나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한 걸로 보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대리인단은 특히 앞으로 전개될 헌재의 탄핵심판에서 치열한 법리 다툼을 예고했다. 대리인단 측에 따르면 답변서에는 ‘최순실(60·구속)씨 등 관련인들의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탄핵심판을 연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헌재가 지난 15일 검찰과 특검에 수사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에 대해 이날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헌재의 심리 자료 확보에 제동을 걸었다.

헌법재판소법 32조엔 ‘재판·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해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는데 헌재가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헌재는 “검찰 수사가 종료됐고 특검 수사 개시 전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법 해석을 내놓은 상태”라고 반박했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은 공정한 절차가 기본적인 생명과 같다. 헌재가 검찰·특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은 다른 근거를 들어 제출을 늦추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대리인단이 “모든 쟁점의 사실 관계 및 법률 관계를 다투겠다”고 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 소추 사유 중 헌법 위반은 5개, 법률 위반은 8개다. 헌재법에 따라 모든 쟁점을 심리하게 되면 180일의 심리 기간이 모자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검찰이 특검에 넘긴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탄핵 사유로 판단하기 불분명한 ‘세월호 7시간의 행적’ 등이 심리를 장기화할 수 있는 요소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박 대통령 측에서 심리를 지연시키려는 전략을 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 대통령은 세 번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통해 머리 숙이면서 인정했던 사실들조차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호진·김선미·서준석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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