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정치력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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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때 잠잠하다 싶던 학원·종교계의 목소리가 4·13조치후 다시 거세어지고 있는데도 정치권이 사실상 손을 놓고있는 가운데 「뜨거운 5월」도 어언 하순으로 접어 들었다.
민정당의 노태우대표의 21일 회견내용에 새로운 제안이 없었지만 민주당 김영삼총재의 22일 회견 역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이렇다할 해결방안이 제시될것 같지는 않다.
아무런 접점을 찾지 못한채 정국은 정말 갈때까지 가고마는 것인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안타깝고 허탈하기만 하다.
대학가의 시위는 민주개헌으로 이슈가 바뀌면서 차츰 격화되고 있고 이를 말려야 할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 서명에 앞을 다투는 양상이다. 가톨릭 신부 7백여명이 단식을 했고, 여기에 개신교 목사와 승려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이 동조하고 있으며 미국의 조야에서도 여야의 타협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런데도 여권은 4·13조치에 따른 정치일정을 강행한다는 방침에서 한발짝도 물러날 기미가 없고 이에 맞서 야당은 장외 투쟁을 통해 정치적 쟁점을 개헌으로 복귀시킨다는 태세를 다지고 있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앞두고 여권내부의 사정이 단순치만은 않다는 사정은 짐작이 간다. 다음 대통령후보로 확실시되는 노대표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국정을 주도해야할 여당으로서 해야할 일, 할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인가. 앞으로 정국을 이끌고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할 요량이면 그 해압은 자명하다.
「4·13조치」가 통치권자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서 나온 결단이므로 당으로서 「무책이 상책」이라고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답은 되지않는다.
개헌논의를 유보한 것이 불가피한 조치였다 해도 민주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는게 우리의 주문이다.
민주화의 가장 핵심적 과제인 언론활성화의 경우 기구만 구성했을뿐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고 공약보다 1년 늦게 실시되는 지자제만해도 국민의 일반적인 기대치에는 훨씬 미흡한 내용이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부각된 인권문제 역시 뚜렷하게 개선된 징후는 없이 가두검색, 임의 동행등이 여전히 성행한다는 소식이다.
이래가지고서 어떻게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안정된 분위기속에서 88년을 맞이할수 있을지 실로 답답하다.
민정당 지구당개편대회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당원간의 단합을 다지고 전의를 가다듬기 위한것이라고는 하지만 야당총재에 대한 원색적인 매도는 마치 「누워서 침뱉기」로만 비칠 뿐이다.
민주당의 통일정강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일수록 토론과 논리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더우기 통일문제가 개헌이나 민주화와 비교할때 국민적 관심이 덜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논쟁을 위한 논쟁은 이제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와 같은 극한대립 상황에서 시국을 극적으로 풀 묘책이 있을것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서로가 먼산 불구경하듯 하면 국민은 어쩌라는 말인가.여야정치인들은 이러한 국민들의 걱정을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헤아려야 한다.
평행선만 긋는 주장은 들을만큼 들었다. 지금은 감정과 독선이 아니라 이성과 유연하고 대국적인 시각에서 시국을 타개할 방안을 짜내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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