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성의 대한태도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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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주 미하원 아시아·대평양소위에서 열린 한국관계 청문회에서 위원장「스티븐·솔라즈」의원은 증인으로 나선 국무성 고위관리들을 이례적으로 칭찬했다.
그는『지금까지 6년동안 이짓(청문회주관)을 해왔지만 오늘처럼 국무성 관리들이 시원스럽게 말하는것은 처음 봤다.과거에는 노보카인(마취주사)을 놓아야 이빨을 뽑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옆에 앉아있던「야드론」인권소위 위원장도 이에 동의하면서「레이건」행정부 초기에는 국무성이 우방 인권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는데 이날 청문회에 임하는 국무성관리들의 자세는 보다 적극적이라고 치하했다.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개스턴·시거」동아시아·태평양담당 국무차관보와「리처드·시프터」인권담당 국무차관보는 과거 어느때보다 한국국내문제에 관해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답변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한국상황을 칠레와 비교하고 여야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4· 13조치 이후에도 선거법개정,언론자유,지방자치제 확립,구속자석방등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주장했으며 한국 민주화를 촉구하는 의회의 결의안은『유익할수도 있다』는 논평을 서슴없이 했다.
이와같은 국무성 고위 관리들의 노골적인 논평은 우방의 인권이나 민주화는 이른바「조용한 외교」를 통해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의회청문회에서건 기자회견에서건 언급을 회피해온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청문회를 주관한 두 의회지도자가 말했듯이 적어도 한국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정부가「조용한 외교」방식을 그만둔듯한 인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첫예가 지난 2월에 있은「시거」차관보의『전환기의 한국정치』라는 제목의 연설이었다.
그 이래로 한국에 관한 미국무성 논평들이 조금씩 노골적 내용을 담기 시작하다 4·13조치가 있은후 갑자기 강도를 더하고있다.
여야어느 편도 들지않고 직선제와 내각제 어느 쪽에도 지지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서 대화와 타협으로 합법적 정부형태를 마련하라던 그들의 도움말은 4·13조치이래 보다 노골화됐다.
이들은 개헌문제는 계속 불간섭의 영역에 두면서 선거법·언론자유·지자제·구속자석방등 구체적 개혁사안은 대단히 강한 어조로 촉구하고 있다.
그와같은 국무성의 태도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명이 있다.
그중 하나는 한국의 재야세력을 의식한 미국정부의 자위수단이라는 것이다.워싱턴의 한 권위있는 외교소식통은「시거」연설이 나오게된 배경을 설명하면서『어차피 개헌합의가 이루어질것 같지않은 비관적 상황에서 미국정부는 그 뒤에 오는 정부와 거리를 둬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4·13조치가 있기 전에 그와같은 설명을 했다.
이말은 4·13조치 이후에 불어닥칠 재야세력의 반발에 대해 미국입장은 그런것이 아니었다는 방패로서「시거」연설을 내놓았다는 의미가 된다.
다른 하나의 설명은 4·13조치를 전후해 미국매스컴과 의회에서 일고있는 대한비판론을 선제해 미국무성이 대한외교활동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려는 의도가「조용한 외교」방식을 걷어치운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관측통은 의회가 과거에는 한국정치발전에 관해 한국정부와 국무성이 설명하면 설득되었지만 요즘은 의회가 독자적으로 정세를 판단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국무성은 통상문제에 있어 의회의 보호주의 입법을 막기 위해 강력한 개방압력을 넣고 있는것과 비슷한 논리로, 보다 노골적인 민주화 성명을 공개적으로 내놓음으로써 의회가 국무성을 누르고 한국정치에 간섭하는 것을 막아보려 한다는것이다.
이 두가지 설명은 어느 한쪽만이 정답이 아니고 국무성입장을 밝히는 두측면이다.
이 설명에 비추어 볼때 의회의 움직임은 아직은 국무성의 영향권을 벗어나지는 않은 단계에 있다.
「포글리에터」하원의원이 대한통상제재법안을 제출하겠다고 증언했을때「솔라즈」위원장이 거의 냉소에 가까운 어조로 부당성을 지적한걸봐도 그렇다.「포글리에터」는 그런 분위기를 감안,자신의 법안 내용을 크게 후퇴시키고 있으며 제출시기도 2∼3주 뒤로 미루었다고 그의 보좌관이 말했다.
그러나 「케네디」상원의원과「페이언」하원의원이 각각 청와대와「술츠」국무장관에게 보내려고 준비중인 공한에 공동서명하는 의원수가 크게 불어나고 있는 현상은 의회가 독자·강경노선으로 움직일 소지가 조금씩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언론은 드러매틱한 사태가 있을때마다 바짝 달아오르다 곧 식어버리는 속성에 따라 한국문제에 관해왔다갔다하고 있다.그러나 한국이 거둔 경제적 가시성과 88 올림픽 덕분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의 양과 깊이는 상당히 커져 있어서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쉽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제 미국의 대한정책이 지금의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어느쪽으로 방향을 굳히느냐는 한국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 관측자는 말하면서 한국쪽에 불안한 눈길을 돌렸다.
필리핀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행정부와 의회와 언론은 평소에는 서로 견제하다가도 어떤 계기로 점화될때 갑작스럽게 한방향으로 돌진하는 속성을 갖고있음을 기억해야될것같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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