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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원칙 깰 수 있다는 트럼프…한국에 불똥 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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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0일 뉴욕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오른쪽). 트럼프는 “(중국과)무역 등 다른 사안들과 관련한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그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AP=뉴시스]

10일 뉴욕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오른쪽). 트럼프는 “(중국과)무역 등 다른 사안들과 관련한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그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이 37년간 고수해 온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폐기할 가능성을 내비쳐 국제적 파장이 일고 있다.

위안화 평가절하 등 미국 피해
협상 않을 땐 37년 정책 폐기 발언
“중국이 아파하는 곳 꾹 눌러본 것”
“북핵 문제 중국이 전혀 안 도와줘”
대중정책과 북핵문제 연결 발언
한국, 미·중 사이 샌드위치 될 수도

그는 11일(현지시간) 방송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만 (중국과) 무역 문제를 포함해 다른 사안들과 관련한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남중국해 대형 요새(인공섬) 건설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중국은 이런 것들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솔직히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우리를 전혀 안 도와주고 있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그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며 북핵 문제까지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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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에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 역시 중국이 가장 민감해 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면서 강한 무역 제재를 예고했다. 그는 지난 8월 경제공약 발표때 “중국이 불법적으로 수출보조금을 지불하고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훔쳐가고 있다. 미국 재정적자의 절반 가량은 중국에 책임이 있다”고 몰아세웠다.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워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와 백인 저소득층 유권자들에 호소하는 전략이었다.

트럼프 발언에 대해 우리 정부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 폐기가 한반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는 정부의 입장이 드러난 셈이다.

미 정부는 1979년 지미 카터 행정부 때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공식화했다. ‘중국과 대만 어느 한 쪽이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반대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중국도 대만 편입을 압박하지 말고, 대만도 독립을 추구하지 말란 취지였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대중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표면적으로는 경제를 내세우고, 실질적으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까지 염두에 두면서 중국을 향해 새로운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며 “중국을 향해 ‘미국이 그려놓은 그림 속으로 들어오라’고 자꾸 압박하는 것으로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도 “중국과의 경제적 협상을 자신의 페이스대로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외교·안보적 차원의 발언을 압박수단으로 쓰는 것으로 아직은 탐색전 수준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지난 2일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통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아무리 트럼프라고 해도 즉흥적으로 한 일이라고 보긴 어렵다. 계산적으로 중국이 아파하는 곳을 한번 꾹 눌러본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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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강경한 대중관이 현실 정책으로 이어지면 한국은 외교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 쪽을 선택하라는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미국이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북용 한미동맹’이 아니라 ‘대중용 한미동맹’을 위해 더 구체적 공헌을 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대중 정책과 연결시키는 듯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서로 아무리 싸우더라도 북한 문제는 별도 사안으로 다루자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었다”며 “트럼프가 미·중 간 갈등 사안과 북핵 문제를 연계하면 북핵 해결엔 먹구름이 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유지혜·정종문 기자 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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