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집안일 덫에 걸린 멸종위기종,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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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동양북스
432쪽, 1만7500원

책을 건네 받았을 때 눈치챘다. 내가 ‘아기를 키우며 일하는 아내’라는 이유로 선택받은 걸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아기가 있는, 일하는 남편’이 이 책을 읽었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이건 내가 매일 밤 11시 온갖 오물과 분뇨가 묻은 아기 옷을 세탁기에 넣고 나서야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맞벌이 가정 아내는 매일 3시간14분 가사노동을 한다. 남편은 고작 40분을 쓸 뿐이다. 외벌이 가정이 아니라 맞벌이 가정인데 이렇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퇴근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수 있을까. 똑같이 출·퇴근하지 않는다는 데 비밀의 열쇠가 있다. 저녁에 역사가 써지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남성은 생존(이라 쓰고 ‘성공’이라 읽는다)을 위해 저녁 시간을 사무실 혹은 술집에서 보낸다. 하지만 많은 여성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시계를 보기 시작한다. 이모님이 저녁 일정이 있어서, 어린이집에 더 이상 늦게 갈 수 없어서 등등 이유는 많다. 요행히 역사가 써지는 저녁 자리에 합류했어도 상황은 비슷하다. 언제쯤 “먼저 일어난다”는 말을 꺼내야 하나 저녁 9시부터 시계를 보기 시작한다. 아니 왜 여자만 그래야 하지?

『아내 가뭄』은 가사 노동 불평등을 저출산·저성장 등의 근본 원인으로 바라봤다. [사진 동양북스]

『아내 가뭄』은 가사 노동 불평등을 저출산·저성장 등의 근본 원인으로 바라봤다. [사진 동양북스]

『아내 가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여자들은 가사노동의 덫에 걸린 거다. 우리는 어렵게 참정권을 얻어냈고 교육권을 쟁취했으며 앞 세대의 희생에 힘입어 드디어 사무실에 입성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사부담에선 탈출하지 못했다. 아기가 아프면 어린이집에선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아기가 좀 지저분한 옷을 입고다닐라 치면 엄마를 탓한다. 아마 아기가 자라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의 성적은 엄마의 성적이 될 것이다. 처음엔 “왜 나한테 이래?”라고 저항하던 여성도 이런 경험이 거듭 되면 결국 강박증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야밤에 벌건 눈으로 집을 치우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기저귀를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같은 시간 남편은 야근 중이거나 해외 출장 중이고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책의 저자는 가사노동을 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을 수행해줄 인력은 생각보다 비싸서 많은 여성은 직업을 포기하고 만다. 당장 벌어들이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소득까지 고려하라고 저자는 외치지만, 직업을 포기하는 여성이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같이 사는 남자를 가사에 동참시키는 것인데, 그러자면 이 책의 서평은 ‘아기가 있는, 일하는 남편’이 써야 한다. 저자가 “이제는 남자들이 달라져야 할 차례”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는 ‘아기를 키우며 일하는 남편’이 될 수 있을까.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시도해보자.

‘가사·육아’ 모래주머니 달고 뛰는 워킹맘

한국의 많은 남성들이 『아내 가뭄』을 읽고 감화받아 가사에 적극 나서기로 마음먹는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거다. 그는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말은커녕 “아기가 아프니 퇴근하겠다”는 말조차 눈치 보느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 치중하는 분위기를 풍기면 무능하거나 불성실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반대로 여성은 항상 이런 질문을 받는다. “아기는(어쩌고 나와 있니)?”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서 할머니가 봅니다”라고 등판에 써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남편은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으리라.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라는 말은 이래서 생긴 게 분명하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마라톤 경주를 하는데, 결혼과 함께 여성은 ‘가사와 육아’라는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게 됐으니 말이다.

여자가 바보가 아니다. 상황이 이러니 결혼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기를 낳지 않는다. 이러다 멸종할까 두렵다면, 사회가 변해야 할 거다. 협박하는 게 절대 아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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