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문호 소잉카 트럼프의 미국 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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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 영주권을 찢어버리겠다”고 선언했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월레 소잉카(82·사진)가 자신의 약속대로 고국 나이지리아로 돌아갔다.

“트럼프 당선되면 영주권 찢을 것”
약속 지키려 고국 나이지리아로
86년 아프리카 첫 노벨 문학상

소잉카는 6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CNN 기자와 만나 “나는 늘 그랬듯이 내가 했던 말 그대로 실천했다. 이건 개인적인 일이며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야 할 모든 것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사회는 매우 기이한 곳”이라며 “(미국엔) 너무나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다. 그래서 선동가가 이해관계가 얽힌 유권자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퍼뜨리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소잉카는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라도 선동가가 만들어 낸 부정적인 기류에 휩쓸릴 수 있다”며 “이게 바로 많은 독재자와 선동가, 포퓰리스트들이 생기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소잉카는 전날 자신의 영주권을 둘러싼 논란을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내 개인적인 행동에 왜 이렇게 야단법석인지 모르겠다”며 “진짜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반 흑인 발언”이라며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그는 퇴임이 기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와의 만남은 그가 대통령으로서 수행했던 가장 힘든 의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소잉카는 지난 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트럼프가 초래할 것들에 공포를 느꼈다. 영주권을 버렸고 내가 항상 있던 곳으로 이사를 왔다”며 “나는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약속은 미 대선 기간이던 지난달 2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가진 강연에서 나왔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발언과 이민 철퇴 공약을 비판해온 소잉카는 이날 “트럼프가 자신이 당선되면 영주권 소지자 전원이 영주권을 다시 신청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며 “나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 트럼프의 승리가 발표되는 순간 영주권을 찢어버리고 짐을 싸서 출국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소잉카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울트라 민족주의’의 국제적 고조에 따른 ‘어처구니없는 결정(ridiculous decision)’이라는 것이다.

미 영주권은 이미 포기했지만 소잉카는 다시 미국에 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 생기면 미국을 방문하겠지만 내 사익을 위해선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소잉카는 아프리카의 혼란한 사회상을 담은 작품들로 1986년 아프리카 작가 중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67년 나이지리아 군부 독재 하에서 22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던 그는 94년 군부 정권의 정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하버드·예일대 등 명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나이지리아로 귀국하기 전까지는 뉴욕대의 아프리카·미국문제연구소에서 상근 연구원으로 일했다. 대표작으로는 『사자와 보석』 『해설자들』 등이 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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