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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행정규칙 통합 검색, 리걸테크 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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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제정부 법제처장

제정부
법제처장

온라인 법률 상담 중개 사이트를 통해 법률 상담을 의뢰받은 이모 변호사. 먼저 의뢰인이 입력한 내용을 확인하고 추가로 필요한 사항을 법률 검색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프로그램은 상담 내용을 분석한 후 관련 법령과 판례 정보를 사건과 유사성 순으로 나열해 보여주고, 승소 가능성까지 확인해 준다. 그리고 이 변호사는 자동 소장 작성 프로그램을 통해 소장을 작성한 뒤, 법률 검색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법률 및 판례 정보를 확인하면서 소송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이는 더 이상 상상 속의 사례가 아니라, 최근 기사를 통해 접한 관련 프로그램의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른바 법률과 기술이 결합한 리걸테크(LegalTech)라는 분야가 다가오고 있는데, 알파고나 국내 엑소브레인 등의 인공지능(AI)이 법령정보와 결합하여 법률 상담, 법령 개선 분야 발굴 등 다양한 법률서비스에 활용되는 것이다.

법제처는 1998년부터 법률 등 4600건의 국가법령과 9만1000여 건의 자치법규, 판례·해석례 및 각종 신청서식 등 353만여 건의 법령정보를 모아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내 손안의 작은 법전’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법제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고 한다. 현재 각 기관 홈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는 일부 고시·훈령 등 이나 유권해석례 등은 단일의 시스템에서 통합 제공되고 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위해 대국민 법령정보 제공 서비스를 법률을 통해 체계화하려고 한다. 관련 법률이 마련되면, 기관 간 칸막이에 갇혀 있는 법령정보를 법제처가 총괄 수집하여 국민에게 원스톱으로 제공하게 된다. 나아가 법령정보라는 공공데이터를 민간이 활용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될 것이다. 법령정보라는 데이터와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결합한 혁신적인 법령정보서비스의 등장, 이른바 리걸테크의 시대가 기대된다.

혁신 전문가 알렉 로스는 미래산업보고서에서 농경시대의 원료는 ‘땅’, 산업화시대의 원료가 ‘철’이라면, 정보화시대의 원료는 ‘정보’라 했다. 정보 중에서도 법령, 판례 등 법령정보는 법치주의 사회의 사회간접자본이라 할 만큼, 기본 중의 기본이다. 부동산·금융 거래, 인·허가, 창업 등 국민의 경제활동에서 법령정보의 보유력과 활용력은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러나 법의 집행은 물론 법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도 누구든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는 “법막여현”(法莫如?), 즉 ‘법은 평등하고 변함이 없으며, 백성으로 하여금 이를 알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법제처가 지금 법제화하고 있는 ‘법령정보의 관리 및 제공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한비자의 정신이 그대로 담겨있다. 정보화시대의 원료인 법령정보를 누구나 평등하게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누구나 사업에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가가 보유한 정보 권력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 이 법률의 취지다. 앞으로 법령정보의 보편적인 접근·공유를 위한 법제처의 발걸음을 주목해 주기 바란다.

제 정 부
법제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