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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돈을 가르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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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한국에 살면서 가장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2013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약 절반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의 소득으로 생계를 꾸린다는 의미다. 분명 젊었을 때에는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왜 은퇴하고 나서는 빈곤층으로 몰리게 된 것일까?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사회적 변화에 기인한다. 첫째, 예전보다 훨씬 오래 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주요국의 기대수명을 살펴보면 한국은 82.3세로 세계 11위다. 여성만 따로 보면 3위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고령화 속도가 빠른 건 주지의 사실이다. 둘째는 출산율의 저하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이다. OECD 평균(1.68명)에 한참 못 미치고, 15년째 초저출산국(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의 멍에를 쓰고 있다. 오래 사는데 자녀는 적다. 이는 오랜 기간 한국 사회를 아주 잘 설명해 온 ‘부모 봉양’이란 키워드가 점점 희미해지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이제는 나이 들어 자녀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는 게 맞다.

그런데도 한국의 부모는 여전히 자녀에게 과도한 투자를 한다. 그동안 나는 강연 등으로 약 2만 명의 사람을 만나면서 노후 준비를 위해서는 사교육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대부분 공감했다. 그러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 아이가 혹시 남보다 뒤처질까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마음’이 실천의 최대 장애물이다. 그러나 여기엔 엄청난 모순이 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들여 수능시험을 잘 치르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치자. 좋은 대학이 부모가 그토록 원하는 ‘성공한 삶’, ‘부유한 삶’과 연결되는가? 그 좋다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난을 피할 수 없고, 입사를 해도 결혼·양육은 물론, 주택 마련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이미 ‘공부=성공’이란 등식이 깨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교육비에 쓰는 자금을 꾸준하게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노후 걱정을 안 해도 될지 모른다. 세계에서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은 어렸을 때부터 주식에 투자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이다. 우리가 50년 전에 버핏에게 100만원을 투자했다면 지금 그 돈은 약 180억원이 돼 있을 것이다. 부모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앞서 말했듯 성공 방정식은 이미 균열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 사교육 때문에 부모가 노후 준비를 못한다면 가계는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자녀에게 진짜 가르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미국이나 중국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창업을 꿈꾼다. 그를 통해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정반대다. 청년들이 모험을 두려워한다. 수능시험·공무원 시험 등 필기시험 천국이다. 너도나도 이 시험에 합격해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길 원한다. 경쟁률도 엄청나다. 그러나 안정된 직장이 넉넉한 삶을 보장하던 시대도 저물어간다. 요즘처럼 취업하기 힘든 세상엔 취업에 성공한 사람보다 취직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팔거나 인터뷰하는 요령을 가르치는 사람이 돈을 더 잘 번다. 진짜 성공하고, 부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남들처럼 취업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다. 혹 취업을 하더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창업을 하기 위한 준비라고 여긴다.

전 세계에 경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유대인은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돈을 가르친다. 미국의 장난감 체인점 중엔 장난감뿐만 아니라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의 주식도 동시에 판매하는 곳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본이 일하게 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한국도 이젠 자녀에게 맞지도 않는 성공 방정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돈의 생리와 흐름을 알려주는 게 낫다. 돈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면 자녀 스스로 성공의 길을 개척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밥상에서 돈을 논하는 것을 창피하거나 품위 없는 일로 여기면 안 된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이 전부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본인의 삶의 질을 고양시킬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공동체에 기여하고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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