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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양수사 「2라운드」… 검찰조사실 안팎|"「비자금」우리는 모른다" 간부들 발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범양상선의 「비자금」운용 등을 둘러싸고 한상연 사장 이외의 범양간부들은 한결같이 회장과 사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지 자신들은 깊이 모르는 일이라고 두 사람에게 미루고 있어 법적인 책임은 어느 선까지인가가 관심거리.
순수히 법률적으로만 볼 때 자금관련 이사들은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 법률전문가들의 견해다.
상법상 이사들은 합의결정체인 이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부장 이하의 근로자처럼 시키는대로만 움직이는 위치가 아니라 의사결정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가령 사장이 돈을 빼돌리려 할 때 이사가 반대하면 법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이론.
이사중에서도 직급이 높을수록 책임이 무거운 것은 물론이다.
이사들이 탈세등을 부인하며 사장·회장에게 미루더라도 문제된 지출결의서 등에 날인이 있는등의 근거가 있으면 처벌될 수 있다.
큰 회사에 있어서 탈세의 경우 회장·사장은 윤곽만 알고 이사 이하선에서 탈세실무작업이 이루어진다는 점도 이사들의 처벌범위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위법성이 있더라도 형사 정책적 차원에서 수사당국의 기준에 따라 처벌범위가 유동적일 수밖에 없으며 범양사건의 경우 검찰은 김영선 전무(52) 등 일부 임원들의 혐의사실을 잡았으나 가벌성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범양사건으로 표면화된 기업의 비자금이 세법에는 접대비란 명목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허용한도의 수십배·수백배가 필요하기 때문에 변태경리가 공공연히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이 검찰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범양의 한 임원은 『범양상선의 경우 세무당국이 1년에 6억∼7억원씩 접대비를 인정해 주고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몇 십배 많은 비자금이 쓰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검찰에서 진술.
○…범양사건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검찰이 범양 전뉴욕지사장 김영선 전무와 한상연 사장 내연의 처 김희평씨(39)를 뒤늦게 수배, 추적전담반을 구성했으나 김전무의 자진 출두로 검찰은 감나무 밑에 누워 떨어지는 감을 받아먹게 된 셈.
○…출두한 김영선 전무는 해운공사 뉴욕주재원·범양전용선 뉴욕지사장 등 오랜 미국생활로 미국영주권을 갖고 있으며 귀국 후 부하나 동료들로부터 『미국사람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
○…검찰의 한 수사관계자는 김영선 전무의 경우 뉴욕에서 은행구좌로 외화를 유출시킨 장본인으로 박회장과 한사장의 비자금 조달창구 역할을 한 핵심인물이기 때문에 한사장의 공소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증거를 쥐고 있어 그의 진술이 한시가 급하다는 표정.
○…검찰은 김영선씨와 김희평씨를 잡지 못한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국세청의 조사과정이 잘못돼 두 김씨를 달아나게 했다고 국세청 조사반쪽을 원망.
검찰에 따르면 김전무는 국세청의 조사과정에서 두번 출두해 진술했으며 김희평씨도 국세청에서 한사장이 조사받는 동안 서류보따리를 가져다 주고 내의 등 옷가지를 전달하는 등 두번이나 나타났었다는 것.
특히 김희평씨는 살고 있는 서초동 D빌라에서 두 아들과 함께 잠적한 뒤였는데도 한사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자 1∼2시간만에 찾아와 결국 구속된 한사장은 김씨의 소재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
○…29일 검찰에 자진출두한 김영선 전무는 28일 하오 검찰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통해 불구속처리를 확약받았다는 후문.
이 때문인지 김전무는 29일 아침 기가 죽은 표정은 아니었으나 수염을 깎지 않은 채 초췌한 모습.
김전무는 검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보도진들이 『김영선씨 아니냐』고 묻자 『아니다』고 부인했다가 신문에 난 사진을 들이밀자 마지못해 『내가 바로 김영선』이라고 시인.
검찰은 김씨가 도착 즉시 보도진과의 접근을 금한 채 15층 조사실로 직행.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한상연 사장은 독방에 수용돼 있으며 자해할 것을 우려, 교도관들이 24시간 감시.
구속되기전 한사장은 검찰조사를 받으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번이 두번째 시련』이라며 『인생을 살다보면 시련도 있는 법이어서 꿋꿋이 살아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는 것.
○…외화유출이 사상 최대규모에 이르는데도 구속숫자가 너무 적다는 여론에 대해 검찰의 한 간부는 『큰 사건이라고 해 게나 고둥 모두 구속해서야 되겠느냐』고 답변.
이 간부는 또『범죄가 드러난 사람들에 대해 법에 따른 처벌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형평을 고려않고 여론에 밀려 도매금으로 구속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인 만큼 앞으로는 지양되어야한다』고 강조. <김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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