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소설 『구운몽』|조직의 굴레에 매인 현대인의 삶을 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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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작가 최인훈이 62년에 펴낸 소설 『구운몽』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굴레들의 허위와 허무를 낱낱이 벗겨내고 있다는 점에서 60년대 소설을 뛰어넘는 고전의 성격을 갖고 있다.
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유·무형의 폭력을 이처렴 상징적으로 고발한 소설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 간판장이 독고민은 어느날 거리에서 큰 봉변을 당하기 시작한다. 그가 가는 곳마다 여러 떼의 무리들이 나타나(그의 의지와는 아랑곳 없이) 그를 사장·애인·혁명군 수령·지도자 등으로 숭배하며 들러붙는다. 어디를 가도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만나야만 하는 독고민은 점차 자신이 서야 할 현실의 땅이 한치도 보이지 않음을 자각한다.
굴레에서의 탈출은 불가능한 것이다. 최후까지 믿고싶었던 자신의 「존재」역시 싫든 좋든 타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운명지워졌음을 느끼는 순간 그같은 허탈감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를 죽음으로 떠밀고 만다.
그러나 그는 죽음조차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 못한다. 『교황의 사절 독고민 대주교는 순교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처럼 남용되어버리는 것이다.
작가는 몽유병자 특유의 심리상태를 이용,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비현실적 행각을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 결과 바깥무리들의 집요한 「폭력」과 한 순수한 청년의 미약한 「저항」이 코믹한 대조를 이루면서『구운몽』은 한 개인의 허물어짐을 싫증나지 않게 보여준다.
독고민의 혼라은 흡사 몽유병자의 그것과도 같은 4·19, 5·16등 혁명기의 혼란함을 대변하는 것이나 나아가 집단폭력에 의해 파멸되고 마는 현대인의 본질을 섬뜩하게 상징하고 있다.
자칫 산만해 질수도 있었던 이 소설이 응축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작가가 「집단에 대항하는 개인의 우선권」을 줄기차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백중성 <서울 관악구 신림2동·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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