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힘 자제한 일집권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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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집권자민당은 결국 「절대다수 의석의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지난 23일 일본중의원 심야국회에서 자민당은 『여야 합의가 없는 경우 매상세 심의를 종료, 폐기한다』는 내용의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임기 반년을 남겨놓고 있는 「나카소네」 수상은 최근 정권의 운명을 걸다시피 하고 이 매상세법안(부가세법안)을 밀어붙여왔었다. 자연히 이날 밤의 최종결단은 자민당의 체통을 여지없이 구겨놓았다. 그러나 자민당은 궤도를 이탈해가며 문제를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의회정치의 본보기를 남겼다.
그동안 매상세와 관련해 여야 모두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는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었으나 실시 시기와 방법을 둘러싸고 3개월째 격렬히 대립해왔다. 사회당등 정책 빈곤의 야당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나 자민당의 보수기반인 농민·유통업계 중소상인들을 부가세 반대세력으로 규합, 「나카소네」수상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하는데 성공했다.
자민당이 지난15일 예산위에서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으면서도 본회의에서 자중자세를 취한 것은 「다수의 힘」의 행사가 몰고을 여론의 악화를 매우 경계한 때문이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수단이 강압적이고 충분한 여론 형성기간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면 민주적 정책이 될수 없다는 자체비판도 있었다. 자민당내에 『부가세 강행을 거부한다』는 일부 의원들의 항명이 있었으나 이들이 제재당하는 볼품 사나운 일은 없었다.
일본은 79년 일반소비세 논의, 80년 그린 카드제도 (보명제), 그리고 이번 부가세등 세차례 세제개혁파동을 겪었으나 모두다 자민당의 참패로 끝났다. 더 오랜 기간의 논의가 모자랐다는 것이다. 부가세를 추진하기 위해 이 제도 도입의 대선배격인 한국을 자주 견학한 어느 일본관리는 『한국의 전광석화와 같은 부가세제 도입이 부럽다』고 했으나 그게 어찌 칭찬의 말인가.
60년 미일안보조약을 둘러싼 일본 국회의 1백일논전도 세상이 뒤집힐듯 매우 소란스럽긴 했으나 일본의 국민적 합의에 큰 보탬을 주었다. 대립과 격론속에 대화와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본정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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