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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도 안내도 청소도 자원봉사, 품격 있는 평화시위 숨은 공로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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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3 면

화장실·교통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들. 우상조 기자

‘대통령이 떨어뜨린 국격을 국민이 높이고 있다.’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세계 언론의 평가다. 100만 명 이상이 매주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데도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것에 세계는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촛불집회가 평화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돕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원봉사자다. ‘시민의 축제’답게 나눔도 안내도 청소도 시민이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3일 6차 촛불집회에서도 많은 수의 자원봉사자가 현장을 도왔다. 황성진 쉐어앤케어 대표는 5명의 직원, 10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시위 시작 전 시청역 근처에서 1만 개의 핫팩을 나눠줬다. 그는 “기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 회사의 사업 취지에 맞게 좋은 일을 하고 싶어 세 번째로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는 집회마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화장실과 교통편의를 안내한다. 1차 집회에서 50명이었던 자원봉사자는 지난주 200명 가까이로 늘었다. 김정배(36·서울 강서구 공항동)씨는 “시민이 많이 모여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아 해소해 보려고 지원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보람 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광화문 네거리 근처에서 시민 200여 명을 안내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생(22·여)은 “집회에 그냥 나오다가 기왕 하는 거 봉사활동 시간도 채우자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보람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멋있어요’ ‘수고해요’라고 해주면 기분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어본 정선희(46·대전시 둔산동)씨는 “글씨를 쓰는 캘리그래퍼인데 필요한 곳에 봉사하고 싶어 SNS에 직접 쓴 문구 올리고 필요하면 쓰라고 했더니 인쇄용으로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에서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11군데 부스에서 초와 피켓을 나눠주거나 화장실과 아동보호소·의료지원단 등의 위치를 안내했다. 세종대왕상 앞 아동보호소에서는 지난주 4명, 이날 3명의 아동을 부모의 품에 돌려보냈다.


재능 기부도 눈에 띄었다. 박미애 수화통역사 등 3명은 2차 집회부터 수화통역으로 자원봉사 중이다. 박씨는 “우리가 수화통역 봉사를 시작하니 청각장애인들이 집회에 참여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지난주엔 청각장애인 20명이 단체로 참석해 가수 양희은씨와 안치환씨가 공연할 때 우리 수화를 보고 수화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뿌듯해했다. 한현심 수화통역사는 “지난주 전체 1분 소등할 때 청각장애인들이 촛불을 안 끄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불 끄라고 소리지르고 야유했던 게 너무 속상했다. 수화통역 자원봉사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주부터는 청각장애인도 시민발언대에서 발언할 수 있게 발언자의 수화를 음성으로 대신해줄 생각이다.


고(故) 신영복 선생에게 붓글씨를 배웠다는 한 남성은 광화문광장에서 글씨 나눔 봉사를 매주 하고 있다. 마실 것을 나눠주는 상인도 늘었다. 삼청동의 한 액세서리 가게에서는 보리차를 끓여 ‘하야수’라는 이름을 붙여 제공했다. 직원 김민진(29)씨는 “지난주에는 목 아파하고 추워하는 시민을 보고만 있었는데 일하느라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차를 준비했다. 집회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도움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통인동 한 커피가게도 차를 끓여 기부 받은 핫팩과 함께 제공했다.


또 카페봄봄·서울노동광장·봄꽃장학회가 만든 봄꽃밥차는 네 번째 집회에 참가해 ‘그만두유’라는 이름의 두유를 시민 2000명에게 나눠줬다. 김동규 카페봄봄 매니저는 “지금까지 총 1만2000개의 두유를 나눠줬는데 오늘은 30~40분 만에 떨어졌다. 시민들이 주신 기부금으로 다음 행사를 준비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이우연 인턴기자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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