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영화 67%가 소일거리 오락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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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른바 「명화」라는 타이틀이 붙은 TV외화의 67%가 오락영화인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오락영화중에는 탁월한 전쟁영화들도 많으나 대부분이 타임킬링용 영화. 이는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방영된 KBS 제1TV의 『명화극장』52편, KBS 제2TV의 『토요명화』53편, MBC-TV의『주말의 명화』54편 등 모두 1백59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1백59편중 멜러물을 포함한 휴먼드라머 52편을 제외한 1백7편이 오락영화인데, 이를 세분화 해보면 ▲전쟁영화 29편 ▲서부극 19편 ▲수사·첩보영화 18펀 ▲SF영화 13편 ▲모험영학 12편 ▲코미디 12편 ▲공포·미스터리영화 4편의 순.
○…1백59편 중 폭력이나 무기(주로 총포류)를 사용한 전쟁물·서부극등 액션영화는 무려 83펀.이는 오락영화의 78%, 전체영화의 52%에 해당한다. 전쟁영화의 72%에 해당하는 21편은 2차대전시 미군측과 독일군측의 전쟁이고, 서부극은 인디언족이나 악당을 다스리는 보안관들의 영웅담이천편일률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미국내에서는 지식인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고 있는 반전영화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TV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이만저만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백59펀의 영화 중 86%에 해당하는 무려 1백36편이 미국영화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방송사측에 따르면 『다른나라 영화보다 재미있으니까』방영된 이들 미국영화들은 그러나 ▲2차대전영화 21편 대부분이 미국이 독일을 쳐부수는 내용이며 ▲서부극 역시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을 정복하는 내용이 절반을 넘고 있고 ▲SF영화 상당수가 위대한 미국인이 신출귀몰하게 세계 및 우주의 악당들을 쳐부숨으로써 상대적인 정의 아래 미국의 공격성이 정당화되고 있다.
○…이같은 오락영화의 홍수현상은 무엇보다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한다』는 방송사측의 안일한 태도때문이다. 즉 이는 시청률위주의 편성을 의미한다.
대리체험장르인 영화를 통해 깊이있는 삶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단발적인 쾌감」에 수동적으로 영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미」를 강조하면서도 경직된 윤리적 척도에 의해 줄거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위질이나 대사왜곡을 서슴지 않는 이율배반적 태도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미국영화의 독점현상은 한마디로 방송사측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것이 영화평론가들의 일반적 견해. 아울러 외화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나 생활상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교육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국내 TV영화는 서구, 특히 미국이 아닌 대륙에 대해서는 일종의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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