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 아이에게 꼬꼬밥” 쌀 든 페트병 300개 서해로 띄워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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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의 한 섬에서 탈북자들이 쌀을 넣은 페트병을 바다로 던지고 있다. 페트병은 조류를 따라 황해도로 흘러간다. 스마트폰 파노라마 기능으로 촬영해 사람 일부가 일그러졌다. [사진 김춘식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의 한 섬에서 탈북자들이 쌀을 넣은 페트병을 바다로 던지고 있다. 페트병은 조류를 따라 황해도로 흘러간다. 스마트폰 파노라마 기능으로 촬영해 사람 일부가 일그러졌다. [사진 김춘식 기자]

“북한 아이들에게 꼬꼬밥(흰쌀밥을 뜻하는 북한말)을 먹이고 싶어요.”

페트병에 쌀 1㎏씩 절반쯤 채워
조류 통해 북 예성강 쪽으로 보내
“제발 아이들이 발견했으면” 염원
‘페트병 쌀로 밥 해먹었다’ 소문도

지난달 30일 오후 1시20분쯤 인천시 강화군의 한 나루터에 승합차 한 대가 도착했다. 차에는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 이혜경(대한약사회 국제위원) 사단법인 새삶 대표 등 탈북자와 자원봉사자 등 10명이 타고 있었다. 서해 바다 밀물 때에 맞춰 도착한 이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트렁크를 열고 다홍색 마대 20개를 바다와 맞닿은 나루터 바닥 위에 내려놨다. 흰쌀이 절반쯤 채워진 1.5~2.0L짜리 페트병 13~15개가 마대마다 들어 있었다. 굶주린 북한 아이들에게 전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쌀이었다. 북한에서 쌀밥을 ‘꼬꼬밥’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닭(꼬꼬)이 귀한 음식인 계란을 낳듯이 귀한 쌀로 지은 밥 역시 꼬꼬밥으로 의미가 확장됐다는 게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페트병 한 개에 담긴 1㎏가량 쌀이면 북한 아이들의 몇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귀한 쌀 한 톨이라도 흘릴까 봐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잠시 후 김용화 회장이 물길을 살피기 위해 페트병 2개를 바다로 시범 삼아 던졌다. 페트병은 부력 덕분에 수면 아래로 잠기지 않고 조류를 따라 황해도 쪽으로 유유히 떠내려갔다. 이를 지켜본 탈북자들은 “야, 오늘 물길 좋네”라고 말했다. 이어 오후 1시50분쯤 탈북자와 자원봉사자들은 물살이 거세지자 나루터 한쪽에 모아 놓은 300여 개의 페트병을 일제히 바다로 던졌다. 한 탈북 여성은 “오리떼처럼 줄지어 가는 거 좀 봐. 제발 아이들이 발견해야 할 텐데…”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북한 쪽으로 띄워 보낸 쌀은 모두 320㎏. 앞서 이들은 지난달 16일에도 500㎏의 쌀을 페트병에 담아 북한 바다 쪽으로 떠내려 보냈다. 21세기 들어 최대 크기의 ‘수퍼문’이 떠올라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한 날이었다. 달의 인력(引力)을 이용해서라도 굶주린 동포들을 도우려는 탈북자들이 인력(人力)을 처절하게 발휘했던 셈이다.

이들은 페트병 속에 든 쌀이 북한 예성강 하구 쪽으로 떠내려가는 것으로 확신했다. 김 회장은 “페트병에 담긴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는 아이 사례가 전해지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은 생식을 하곤 하는데 페트병 속 쌀만 주머니에 넣어 몰래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페트병 쌀 보내기는 김 회장을 중심으로 지난해 말 시작했는데 이날이 13번째였다. 이런 방법의 쌀 보내기는 2008년 납북자가족모임 등이 주도해 강원도 고성에서 이뤄졌다. 1997~98년 두만강 홍수 때 중국 쪽에서 함경도 쪽으로 떠내려온 중국인의 페트병 속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뜻을 같이한 탈북자와 일부 종교 단체 회원들이 십시일반 쌀을 모았다고 한다. 기부 쌀에는 정부에서 탈북자 가정에 지급한 ‘나라미’도 포함됐다.

탈북자들은 남북관계가 경색돼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마저 끊긴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혜경 대표는 “북한 주민들은 무력감에 빠져 자신이 왜 소중한 존재인지 망각하고 산다. (대북 지원으로) 왜 북한 주민들이 소중한지, 우리가 왜 그들을 도와주려 하는지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대한약사회 차원에서 간단한 의약품을 페트병에 넣어 보내는 사업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강화도=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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