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에게 ‘내년 4월 하야’ 요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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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새누리당 비박계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년 4월 말까지 퇴진하겠다”고 공표하라고 30일 요구했다. 전날 박 대통령이 “여야 정치권이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고 밝힌 데 대한 응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비박계의 ‘내년 4월 퇴진’ 요구가 ‘질서 있는 퇴진’을 실현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임채정·김원기 등 더불어민주당 원로들과 권노갑·정대철 등 국민의당 원로들도 지난달27일 국가원로 시국회동에서 동의한 일정이다.

국정 수습·대선에 적절한 시점
대통령 거부 시 탄핵 돌입해야
‘개헌 연계’ 꼼수는 절대 금물

박 대통령이 내년 4월에 물러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하고 그때까지의 국정 권한을 국회가 추천한 책임총리에게 넘긴다면 탄핵으로 야기될 국론 분열과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대선 일정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좌우되지 않고 ‘6월’로 분명히 정해지게 된다. 여야의 잠룡들이 자신을 충분히 알리고, 공정한 경선을 통해 대선에 도전할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통령이 임기를 단축해 물러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위기상황이다. 다음 대통령을 뽑는 대선 절차가 예측 가능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를 감안해도 4월 퇴진은 적절한 선택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담화가 ‘꼼수’일 뿐이라며 탄핵 강행을 외치고 있다. 분노한 민심을 감안하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라를 생각할 때 일단은 박 대통령의 퇴진 일정·절차를 국회 차원에서 합의해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향후 일주일 동안 비박계와 머리를 맞대 박 대통령의 퇴진 로드맵 단일안을 도출하고 이를 청와대에 던지면 된다.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면 즉시 과도적으로 국정을 관리할 거국내각을 출범시키고, 대선 준비에 들어가면 된다. 만약 박 대통령이 또 다른 핑계를 대며 퇴진 로드맵을 거부할 경우엔 9일 본회의에서 비박계와 손잡고 탄핵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이미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 수명을 다했다. 대한민국은 ‘포스트 박근혜 체제’를 안착시켜야 할 중대한 시점에 접어들었다. 연착륙을 통해 전대미문의 국정 혼란을 효과적으로 수습하고 재도약을 이루려면 질서 있는 퇴진이 최선이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어떤 행동도 하면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담화에서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는 표현으로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을 해줘야만 하야할 수 있다는 뜻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했다. 이런 식의 정치공학은 절대 금물이다. 지금은 여야가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성사에 온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개헌을 퇴진 협상에 연계시키면 야당이 협상을 거부하고 탄핵을 밀어붙일 구실만 줄 뿐이다.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의 실패에 책임이 큰 친박계의 2선 후퇴도 필수다. 이정현 대표 등 친박계 지도부는 퇴진 로드맵 협상을 비박계에 맡기고, 이른 시일 안에 물러나 당의 환골탈태를 앞당겨야 한다. 지금은 정파적 이익을 접고 오로지 대한민국을 생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