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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책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무실을 방문했다. 바로 요즘의 일이다. 뜻밖의 광경들이 많았다.
그중에도 놀라운 것은 눈부시게 발전한 학교의 모습 그것이 아니었다. 국민소득 2천달러, 서울도심의 설립한 신축빌딩, 마이카 행렬, 학생들의 깨끗한 옷차림. 우리 시대의 이런 심벌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풍경이 교무실에 그대로 연출되어 있었다.
우선 좁디 좁은 공간이 숨을 막았다. 저쪽에 앉은「선생님」을 찾아가려면 미로찾기 퍼즐이라도 해야할 형편이었다.
한정된 자리에 책상을 들여 놓자니 그 모양이 된것 같다. 당장 교실늘리기가 급했으리라. 교무실은 밀리고 밀려 네모반듯한 방도 아니다. 되는대로 생긴 공간에 책상도 되는대로 놓았다. 정작 교수의 책상 옆엔 앉을 자리도 없었다.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교사의 책상이라는 것도 신문을 펴놓기가 어려웠다.
그런 자리에서 교재를 펴놓고 수업준비를 한다는 말인가. 책상의 크기도 크기지만 교사들은 총총히 끼어앉은 자리에서 어떻게 학생을 불러들여 무슨 얘기를 한다는 말인가.
학생은 그런 자리에서 어떻게 속마음 얘기를 할수있었으며, 교사는 또 어떻게 훈화를 할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2세교육의 어려운 현실은 교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의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교사들의 환경이 더 문제인것 같았다.
그 학교 교수는 차라리 자위하는 말을 했다. 좁은 교무실의 좁은 책상은 그나마 다행한 편이라는 것이다. 어떤 학교의 교무실엔 그런 책상마저 들여놓기가 어려워 선술집 식탁모양의 긴 테이블을 놓고 의자만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니까「내 책상」,「내 서랍」,「내 공간」이 따로 없다. 이런 환경속의 선생님들은 정거장 대합실에 앉아 있는 기분일것 같다.
서울엔 지금 9백50여개의 초중고가 있다. 교사만해도 5만명이 넘는다. 학생수는 2백23만명. 그중에도 고교생은 해마다 4만3천명씩 늘어난다. 당연히 교사도 늘어야 할것이다. 이들에게 교실과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 주어야한다.
서울에 학교 하나 지으려면 적어도 4천평의 대지가있어야 하고 집짓는 비용까지 하면 5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큰 소리칠때마다 중진국이 어떻고, 선진국의 문고리가 손에 잡힌듯 떠든다. 더도 말고 이웃 학교의 교실과 교무실을 가보면 혀가 움츠러들것 같다. 우리는 할일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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