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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김명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제 7살 된 우리집 아이는 주변의 장난감·과자이름 등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물건의 이름 읽기로부터 시작하여 아주 조금씩 스스로 한글을 터득해 가고 있다.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즐겁게 상품포장과 간판을 읽고 따라 써보기도 한다.
가장 흥미있게 많이 물어 오는 것은 역시 장난감들이다.
사내아이라 특히 자동차·총·칼·탱크·헬리콥터 등엔 더욱 열심이다.
얼마전부터 조르던 탱크를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해 오다 며칠전 하나 사주었다.
포장한 것을 무심히 아이에게 넘기니 급하게 포장지를 풀고 탱크상자에 쓰여진 이름을 찾느라 분주해 보였다.
『엄마, 이거 보라매라고 썼지?』 아이가 가리키는 곳엔 세 글자가 조그맣게 적혀 있었다.
『그래, 맞았다. 또 다른 글자를 찾아 봐.』 『이거 전부 읽어 줘. 모르겠어.』 아이가 내미는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세 글자 외에는 정말 한글이 더 보이지 않았다.
혹시하며 몇번을 찬찬히 훑어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빼곡하게 들어앉은 영어였다. 마치 숨은 글자 찾기 하려는 것처럼 앞부분 왼쪽 밑단에 조그맣게 적혀진 세 글자만 찾는데서 아이의 기쁨은 그쳐야 했다.
굵고 큰 글씨로 금방 눈에 들어오게 전투용 탱크라는 뜻의 외국어는 위풍당당한 외국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뚜렷이 그려져 있었다. 설명해 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를 두고 사전부터 찾아야 할 판이었다.
기능설명까지 영어로 쓰여져 있으니 어린이들 영어 조기교육에 장난감도 한몫 하려는 것인가?
「U.S.ARMY」라고 쓰여진 탱크를 가지고 아이는 엄마가 영어를 모른다고 판단했는지 벌써 저 혼자 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육군이라고 새겨진 탱크에 큰 글씨로 「보라매 탱크」라고 제목을 붙여줬다면 읽어가는 엄마는 정확한 발음과 설명으로 아이가 그 글자와 뜻을 잘 알 수 있게 지도하련만….
놀고있는 아이를 불러 큰 종이와 색연필을 가져오게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대한민국 육군아저씨」라고 크게 쓰고 「탱크」라고 밑에다 써 주었다. 아이가 새로 써준 글자들을 읽고있는 동안 나는 슬며시 그 포장상자를 집어 파지 모으는 통으로 가져가면서도 마음속은 영 개운치 않았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51동 1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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