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주신 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이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아이는 부득이 전학을 시켜야했다. 며칠 전부터 눈이 퉁퉁 부은 아이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갈때 아이는 벌써부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이는 펑펑 울면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마침내 엄마보다 더 좋아했던 선생님과 헤어질 차례를 맞았다. 선생님은 큰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아이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신 후 예쁜 포장지로 싼 선물을 아이의 손에 가만히 쥐어 주셨다.
집에 돌아와 조심조심 포장을 벗겨보니 책이 한권 들어 있었다. 아이는 울다말고 그 책을 보더니 어린아이답게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너무 놀라 쓰러질뻔했다. 『엄마, 왜 그래』하는 아이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 동화책은 『알프스의 소녀』였다.
20여년 전의 일이다. 내가 여중에 입학했을 때니까. 담임선샘님은 덧니가 예쁘게 난 국어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국어를 잘하는 나를 누구보다 귀여워하셨고 나도 선생님처럼 국어선생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다. 결국 입학 첫학기부터 나는 공납금을 낼 수 없었다. 미납자 명단이 크게 나붙은 날 나는 엉엉 울면서 가방을 들고 교실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은 내 눈물을 씻어주시면서 책 한권을 꼭 쥐어주셨다.
『용기를 내자, 응?』
『알프스의 소녀』였다. 그리고 책갈피에는 공납금 납부영수증이 들어있었다. 어머나!
나는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하이디」처럼 밝고 꿋꿋한 소녀가 될 것을 무수히 다짐했었다.
20여년전의 그 책이 지금 내 아이의 손에 또 다른 선생님의 선물로 쥐어져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은혜의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앞으로 지인의 아이들을 위한 나의 선물은 모두 동화책 『알프스의 소녀』가 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