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변수 ‘질서 있는 퇴진론’ 박 대통령, 일단 수용 거부 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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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론’이란 선택지를 받아 들었다.

청와대 내부에선 조심스럽게
‘질서 있는 퇴진 검토 필요’ 목소리

지난 27일 각계 원로들이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하야 ▶거국중립내각 구성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 등을 골자로 한 단계적 퇴진론을 주장한 데 이어, 28일에는 새누리당 친박계 중진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오자 이 사안이 탄핵정국의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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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박 대통령은 ‘질서 있는 퇴진론’은 수용하기 힘들다는 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자신이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최씨와 공범 관계로 몰고 가는 검찰의 공소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질서 있는 퇴진론은 박 대통령에게 스스로 범죄 사실을 인정하란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차라리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측의 변론을 받아들여 탄핵안이 기각될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 같다고 여권 관계자는 말했다.

질서 있는 퇴진론을 수용해도 박 대통령은 실질적인 권력은 국회에서 지명한 책임총리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2선으로 물러앉는 모양새가 된다. 그럴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국정 역사교과서 등 박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 순식간에 뒤집힐 공산이 크다. 그럴 바엔 자신은 탄핵되더라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는 걸 박 대통령이 선호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사표를 반려하는 데 실패하면서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모습을 노출하고 있다. 평상시였다면 장관이 퇴진을 원하더라도 대통령이 만류하면 사의를 접는 게 관례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김 장관이 사표를 제출한 이후 일주일간이나 사퇴를 만류했지만 뜻을 돌리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후임 법무장관 인선에 착수해야 하지만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후임자를 구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럴 경우 당분간 법무부는 이창재 차관 대행체제로 운영돼야 한다. 청와대는 김 장관과 함께 사표를 냈던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는 ‘보류’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 수석은 계속 업무를 볼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사표가 반려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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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 내부에서도 ‘질서 있는 퇴진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 참모는 “참모들 입장에선 이대로 탄핵안이 통과되는 걸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순 없는 것 아니냐”며 “만약 청와대가 질서 있는 퇴진론을 수용한다면 야당도 탄핵안 추진을 중단할 용의가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박 대통령은 이미 개헌을 공식 제안했다”며 “질서 있는 퇴진론이 개헌 논의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정국 전환의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워낙 예민한 사안이라 내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한 적은 없다고 한다.

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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