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국시」는 무엇인가|유의원사건 재판부에 세 교수가 회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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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시시비가 다시 일고 있다. 국시문제는 지난해 신민당 유성환의원(구속 중)의 국회발언 원고배포사건에서 말썽이 된 이후 최근 유의원의 담당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합의14부(재판장 박영무 부장판사)가 3월23일 서울대법대 권영성, 서울대 사회과학대 한완상,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장을병교수 등 학자 3명에게 국시에 관한 사실조회를 의뢰한데 대해 2일 이들이 각각 회신을 보내옴에 따라 법정으로 다룸이 옮겨지게 된 것.
재판부는 이들 3명의 교수에게 ①국시의 일반적 개념 또는 정의 ②오늘날 대한민국에서의 국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③국시와 관련하여 「(평화)통일」 또는「반공」을 어떻게 볼것인지 등 똑같은 3가지 문항에 대해 각각 의견을 조회했었다.
이들이 재판부에 보내온 의견을 소개한다.
①국시의 일반적 개념 또는 정의
▲권영성 교수(서울대법대)=국시는 비법학적·비헌법적 개념이므로 학문적으로 논의된 일도 없고 논의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국시는 법률학 사전·헌법학원론·정치학사전·백과사전에도 없는 희귀한 용어로 국어사전에만 「국민전체가 옳다고 인정한 주의와 시정의 근본방침, 확정되어 있는 한 나라의 방치」이라고 되어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이념이나 지표 등은 헌법규범의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고 ▲국시란 개념을 사용하면 국시가 헌법보다 위에 있거나 동등한 규범인 것처럼 오해할 우려가 있어 헌법의 최고법규성과 모순되며 ▲국시는 주장하는 사람이나 시대에 따라 내용이 유동적이고 변할 수 있는데다 국민전체의 합의여부가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없고 ▲국시는 법적개념이 아니어서 이를 형사처벌 근거로 원용한다는 것은 법치주의·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므로 국시의 개념은 법학이나 헌법학 영역에서 논의될 이유가 없다.
▲한완상 교수(서울대 사회과학대)=국시란 국민전체가 옳다(하)고 인정하는 기본방침을 뜻한다. 즉 ①국민의 절대다수가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주의나 정책이다. 여기서 국시는 국민의 절대다수 또는 전체의 자발적 동의와 합의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특정 집단이나 계급의 주의·정책과 뚜렷이 구별된다.
②국가정책들의 기본과 기초를 뜻한다.
③국가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 목표를 뜻한다. 그러므로 여러 국가지표들 중 가장 중요한 궁극적 지표와 목표가 국시로서 수단적 가치를 지니는 다른 정책이나 지표와 구별된다.
▲장을병 교수(성대 사회과학대)=『한국어 대사전』을 보면 『국시란 국민전체가 옳다고 인정한 주의와 시정의 근본방침. 확정되어 있는 한나라의 방침…』이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의문점은 과연한 사람의 반대도 없는 「국민전체가 옳다고 인정하는 주의…」가 있을 수 있느냐에 있다. 따라서 국시란 「국민의 다수가 옳다고 인정하는 주의와 시정의 근본방침」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합당할 것 같다.
그렇다면 국시는 무엇인가를 실현하고자하는 긍정적인 가치여야지 부정적인 가치일수는 없다. 말하자면 국시는 「자유」니 「평화」니 하는 긍정적인 가치여야지 「불의」니 「억압」이니 하는 따위의 부정적인 가치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②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권 교수=「평화통일이라는 견해」(고교 교과서·사회I),「반공으로 보는 견해」 (김종심 전 국무총리·71년 국회회의록), 「자유민주주의로 보는 견해」(66년 대법원판결 등)등 엇갈리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국시란 개념은 사용할 수 없다고 보지만 구태여 견해를 밝힌다면 ▲대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문화·복지국가의 원리이며 ▲대외적으로는 평화주의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유민주주의는 반전체주의·반권성주의를 함의한 것으로, 그것은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파시즘 등 모든 독재체제에 대한 부정을 내용으로 하고 평화주의는 한반도통일정책과 연관시킬 경우 평화적 통일과 민족주의를 그 내용으로 한다.
▲한 교수=오늘날 우리나라의 국시는 헌법에서 내세우는 「민주공화주의」 즉, 민주공화제를 바탕으로 한 의회민주주의라고 하겠다. 그것은 첫째 국민 절대다수가 의회민주주의를 옳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둘째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의회민주주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슨 국가시책이라 하더라도 의회민주주의를 위축시키거나 제약시키는 것은 국시를 어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장 교수=국시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국민의 여망이 달라지면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 실현을 최고의 긍정적 가치로 삼았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평등의 구현을 최고의 긍정적 가치로 삼았던 때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국시가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할수 있다. 설사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은 바뀌어갈 망정 「민주주의의 구현」 그 자체는 우리가 영원히 추구해야 할 긍정적 가치이자 대한민국불변의 국시라 할 수 있겠다.
③국시와 관련하여 「(평화)통일」또는 「반공」을 어떻게 볼 것인가.
▲권 교수=국시와 대치될 수 있는 개념인지 의문스럽지만 국가이법 또는 지표를 보면「평화통일」이나 「반공」 모두 그 내용이 되나 우선순위나 비중을 따진다면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질성이 극단적인 양 체제일 경우 평화적 방식에 의한 통일은 쌍방의 협상 내지 절충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해석하는 게 논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정부는 7·4남북공동성명에서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하여야한다」고 했고 전두환 대통령도 82년1월 국정연설에서 「남북한 쌍방 중 어느 일방이 자기의 사상·이념·제도를 앞세워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통일만을 고집하는 한 통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전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나타난 평화통일의 의지를 성실하게 구현하려면 전면적 적화통일도, 전면적 자유민주주의통일도 고집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므로 결국 자유민주주의적 요소의 부분적 폐기와 북측 체제의 부분적 수용은 어차피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즉 평화적 통일정책구현을 위한 통일논의에 있어서 북측체제의 부분적 수용을 부득이한 것으로 용인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거시적 안목에서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미시적 안목에서 용공적 발상으로 규정되어 규탄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교수 △의회 민주주의국시와 반공과의 관계=의회민주주의란 국시는 정책의 목표요, 기초이며 반공은 그 목표를 실현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수단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국민 절대다수가 의회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반공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이지, 반공을 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해야한다고 믿지 않는 것을 보면 명백하다. 그러므로 반공정책의 구체적 추진이 의회민주적 활동과 국민의 기본권을 위축시키거나 제약한다면 스스로 그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이다.
△통일과 반공과의 관계=한민족에게 조국의 평화통일은 민족의 지상과제이자 숙원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우리 몸에 와 닿는 까닭은 통일이 모든 국민의 공감을 얻는 국시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도 평화통일을 국시라고 밝히고 있다. 반공이 지니는 수단적 가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국민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만큼 「우리의 소원은 반공」이란 말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다는데서 다시 확인된다.
결론으로 말하면 의회민주주의·평화통일·반공의 3가지는 모두 중요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의회민주주의이며 다른 시책·정책은 수단적 가치를 지닌다고 봐야한다.
▲장 교수=우선 반공을 국시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반공은 설사 국시인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한 한낱 방패로는 인정될 망정 그 자체를 국시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시는 긍정적인 가치여야 하는데 반해 반공은 부정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반공을 국시라고 우긴 것은 냉전이데올로기에 젖어있던 시대의 과장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평화통일」은 국시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무엇보다「평화통일」은 우리민족 대다수가 희구하고 있는 염원이자 긍정적인 가치다. 그런가하면 불변의 국시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구현」도 민족통일이 이룩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다. 「민주주의의 구현」을 올바로 이룩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평화통일은 지상의 과제이니 「평화통일」을 국시라고 주장한들 모순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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