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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12월호] “평양 주민들의 표정에서 미래의 낙관이 읽혔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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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밀대화의 주역 토니 남궁 박사

국의 정권 교체는 향후 북·미 관계에도 상당한 변화와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올 들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사라지게 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사뭇 다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강경책과 유화책의 양극단을 오가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주류 방송매체에 취재 적극 허용, 대화도 공세 외교로 전환
10월 북·미 대화에선 핵보유국 지위, 핵프로그램 인정문제 거론 안돼
김정은 북한 확고히 통제, 미국 선제 공격 시 대규모 반격은 ‘필연적’
트럼프 당선인, 냉전적 사고 않는다면 북한과의 ‘딜’ 가능성 커질 듯

10월 21~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북·미간 비밀 대화는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열렸다는 점에서 관련 당사국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북한에서는 한성렬 외무성 부상, 장일훈 유엔주재 차석 대사가 참석했고, 미국에서는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 조셉 디트라니 전 국가정보국장(DNI)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이 참석했다. 한 외상과 장 대사는 북한 외무성 산하 연구소 관계자 자격으로 참여해 트랙2(민간 채널) 대화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이들이 북한 관료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1.5트랙(반관반민·半官半民) 대화의 성격이 짙다.

이번 비밀 대화 직후 북한은 ‘선(先) 평화협정, 후(後) 비핵화’의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고, 미국도 “비핵화 빠진 북한과의 대화 반대” 의사를 밝히는 등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린 것처럼 보인다.

‘트랙2 대화’ 미 국무부와 사전협의, 사후 보고

10월 북·미 비밀 대화에는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또 한 사람의 주역이 있었다. 바로 비밀 대화의 중재자이자 코디네이터역할을 한 토니 남궁(71) 전 미 UC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부소장이다. 미국 국적의 한인(韓人) 토니 남궁 전 부소장은 북·미 교섭, 북·일 교섭을 막후에서 지원하는 과정에서 평양을 60회 이상 방문했다. 북·미간 대화 과정을 누구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말레이시아 북·미 대화를 마무리하고 한국을 찾은 그를 11월 초 <월간중앙>이 만났다. 11월 8일 미국 대선 이후의 상황에 대해선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답변을 추가했다.

2013년 1월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미 뉴멕시코주지사(뒷줄 왼쪽 둘째와 셋째). 토니 남궁 박사가 방북을 주선했다.[중앙포토]

2013년 1월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미 뉴멕시코주지사(뒷줄 왼쪽 둘째와 셋째). 토니 남궁 박사가 방북을 주선했다.[중앙포토]

지난달 말레이시아 북·미간 비밀 대화에 앞서서 국무부와 사전협의가 있었는가?
“그렇다. 어떤 트랙2 대화든 미국 국무부와 사전협의를 거치게 된다. 트랙2 대화의 목적이 공식적인 트랙1 회담을 촉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랙1 회담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트랙2
대화의 역할이다. 트랙2 대화가 끝나면 국무부에 보고를 하게 된다.”

대화 분위기는 어땠나? 과거에 비해 부드러웠나?
“북한이 이런 비공식적인 만남에 관심을 가질 때는 북한 외무성이 국가간 이견을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시점과 맞물린다. 또 이런 대화 모임에 참여하는 관료들은 목표지향적이며 의욕도 넘친다. 논쟁보다는 건설적인 대화를 모색하는 편이다. 미국은 북한의 태도변화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이를 워싱턴에 보고하고자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트랙2 회동에 미국은 민간인들이 참석한 반면, 북한에서는 외무성 부상, 유엔 차석 대사가 나온 이유는 뭔가?
“북한에는 1.5트랙 대화에 나올 만한 민간 영역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만한 인력도 없는 상황 아닌가.”

트랙2 대화에 참여한 두 나라의 속내를 풀이해달라.
“물론 북측 참가자들도 정부 관료 자격으로 오진 않는다. 한성렬 부상의 경우 북한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 상임고문, 장일훈 유엔 주재 차석대사도 같은 연구소의 수석연구원 자격으로 왔다. 다른 참석자들도 정부 관료가 아닌 연구소 실무 연구원으로 합류한 것이다. 북한 측 관계자들은 실은 관료이면서 민간인인 척하는 것이고 미국도 이에 속아주는 척하는 대화다.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해서 워싱턴에 보고하는게 대화의 주요 취지라면 취지다.”

2010년 12월 16일 토니 남궁 박사와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지사가 평양에 도착했다. 벽에 김일성 부자의 사진이 걸려 있다.

2010년 12월 16일 토니 남궁 박사와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지사가 평양에 도착했다. 벽에 김일성 부자의 사진이 걸려 있다. [중앙포토]

2015년 2월 방한한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실험 중단, 사찰을 통한 핵동결 검증이 대화의 조건이다”라며 “이 조건들이 이뤄져야 우리는 회담을 열고 해법을 찾을 수 있는지 논의해볼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대화에서 사찰을 통한 핵 동결 검증 등의 논의도 있었나?
“양측간 공식 대화가 진행될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이다. 양측 참석자의 자격이 정부 관료가 아닌 민간인이라는 점에서 협상을 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다. 트랙2 대화는 협상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내가 이걸 주면 저걸 줄 건가’라는 식의 협상은 절대 아니다.”


10월 대화에서 9·19 공동성명(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 당사국이 채택.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에너지를 지원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 언급됐나?

“물론 비핵화 문제는 여러 번 제기됐으며 이는 미국의 최우선 목표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9·19공동선언,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북한의 핵무기는 중대 관심사였으며 대화의 처음이자 끝을 장식했다. 북한의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라든지 군축회담, 미국의 북한 핵 프로그램 인정 등의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대화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나?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50%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될지, 또 북한의 정책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사전에 만나본 느낌
으로는 그 확률이 75%에 이를 것 같았다.”

북한이 미국 정부, 한국 정부에 전달해달라는 주문 사항이 있을법한데.
“대답할 수 없다.”

비핵화 문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의제 중심

트럼프 당선이 향후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조망해달라.
“지금 북·미 관계의 미래를 예단하기는 매우 이른 시점이다. 다만 트럼트는 대선 후보 시절 이념보다는 거래 개념이 강한 비즈니스 견지에서 북한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가 냉전적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사고하지 않는다면 ‘딜(deal)’이 이뤄질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그는 또 미국과는 아주 상이한 북한의 사회·정치 체제를 그렇게 거북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현 시점에서 미국의 대북 접근법이 한·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망하는 것도 설익은 감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중시하는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미국 동맹국들은 동맹비용의 추가 분담에 대한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을 보는 북한의 시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북한은 늘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을 피해왔다. 남한은 한 민족이라서 예외로 취급했지만. 미국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북한의 이런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어떤 정책을 가다듬을지 관심 있게 지켜보리라는 사실이다.”

비밀 대화에서 비핵화 문제는 여러 번 제기됐으며 이는 미국에게 최우선 목표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9·19공동선언,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북한의 핵무기는 중대 관심사였으며 대화의 처음이자 끝을 장식했다.”

토니 남궁 전 부소장은 1945년 집안이 망명 중이던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일본에서는 초·중·고 전 과정을 도쿄 소재 미국인 학교에서 수학했다. 이어 미시간주 캘빈 칼리지 졸업후 석·박사 학위는 버클리 대학에서 아시아 역사학으로 받았다. 동아시아 문제의 대가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가 설립한 UC버클리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의 부소장으로 1974년부터 1984년까지 일했다. 이런 인연으로 북·미, 북·일간 1.5트랙 대화를 이끌어왔다.

요즘 북한 내부의 풍경이 궁금하다. 가장 최근의 방북은 언제였나?
“올 8월이었다. 평양, 개성, 비무장지대(DMZ)를 둘러보았다.”

10월 말레이시아 북미 대화에 참여한 한성렬 외무성 부상(왼쪽). 이 대화에 미국 대표로 참여한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는 차관보로도 활동했다.[중앙포토]

10월 말레이시아 북미 대화에 참여한 한성렬 외무성 부상(왼쪽). 이 대화에 미국 대표로 참여한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는 차관보로도 활동했다.[중앙포토]

주민들의 표정이랄까, 사는 형편은 어때 보였나?
“평양의 건설 붐을 취재하는 미국 방송사 <ABC> 취재팀과 함께 갔는데 밖에서 말하는 것과 북한 내부 사정은 딴판이다. 평양 상공에 헬리콥터를 띄워서 촬영을 하기도 했는데 시가지 곳곳이 건설 경기로 들썩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주민들이 애용하는 음식점도 수백 개에 달했다. 5년 전과 비교해보면 평양 시민들의 옷차림도 훨씬 좋아진 느낌이었다. 킬힐까지는 아니지만 하이힐이 거리를 활보하고 패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시민들의) 휴대전화 소지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1990년대 초 혹은 중반의 중국 모습이라고나 할까.”

비교적 긍정적인 측면만 본 것 같다.
“그럴까? 분명 사회 전반에 안도하는 분위기가 감돌았고, 주민들의 표정에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읽을 수 있었다. 많이 웃고, 떠들고, 행동도 자연스러웠고…. 아마도 ‘이제 핵무기를 가졌으니 아무도 우리를 공격하지 못 한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과거에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혹시 오늘 미국이 핵 공격을 해오진 않을까’라는 두려움에 차 있었던 곳이 평양이었다.”

그런 평양의 분위기를 지방의 도시와 농촌에서도 접할 수 있을까?
“2년 전에는 원산을 가보기도 했고, 이번엔 개성을 찾았다. 평양의 활기가 지방의 군소도시로까지 확산됐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지역에서도 예전보다 활력이 넘치는 건
분명한 사실 같다. 거리를 달리는 자전거가 늘고 사람들도 이런저런 일로 분주해 보였다. 어두침침한 야경에다 인적이 드물었던 시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풍경이었다.”

북한, 미군 유해송환 등으로 미국과 접촉 확대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는 말인데.
“예를 들면 <CBS> <NBC> <ABC> 등 미국 내 주류 언론 대부분이 북한 당국의 방북취재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들고 싶다. 미국 언론사들이 북한 당국의 국장급, 부국장급, 중견관료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는 과거에 보지 못한 현상이다. <ABC>는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만났다.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훨씬 빈번해질 것 같다. (1.5트랙 대화를 통해) 미국 사람들과 대화하고,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북한 외교전략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전쟁에서 숨진 미군유해 송환문제 등 인도주의 의제도 다뤄지리라 예상해본다.”\

지난 9월 미국 내 대표적 ‘북한통’으로 불리는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의 측근들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간 현안을 협의한 바 있다. 방북 과정에서 북한 수해 피해 복구지원과 미군 유해 송환문제, 북한에 억류된 미국 대학생 석방 건 등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토니 남궁 전 부소장은 2013년 에릭 슈밋 구글 회장,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방북을 주선하기도 했다.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언제인가?
“1990년 첫 방문 기회를 가졌다. 당시는 호텔이라고 해도 실내가 어두컴컴했고 투숙객과 마주치는 일도 별로 없던 때다. 분위기가 어둡고 부자연스럽다고나 할까.”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는 강력한 대북제재를 가하고 있다. 안에서 본 북한은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하던 기색이던가?
“고통의 흔적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백화점이나 상점에서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넘어온 수입품들로 넘쳐났다. 2000년대와 달리 지금은 호텔도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투숙객들로 북적댄다. 개인적으로는 대북 경제제재가 효과적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물론 경제제재가 1년 정도 시차를 둬야 효과를 볼 수 있고, 더 많은 시일을 요하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서는 경제제재의 효과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8월에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토니 남궁 박사는 최근 평양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원두커피를 파는 카페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지난 8월에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토니 남궁 박사는 최근 평양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원두커피를 파는 카페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북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알기에 어떻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여기저기 둘러본 바로는 제재가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유가나 거시경제를 보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일상에선 그런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

혹시 방북 과정에서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읽혀지던가?
“8월 방북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외무성 관료들이었다. 전쟁이 아닌 다른 해법을 찾는 게 외교 관료들의 직분이다. 그래서 이 질문에 얼마나 정확하게 답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군대와 노동당은 전쟁을 불사할 수도 있겠지만 외무성 사람들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범주에서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하겠지만 진실을 어떻게 알겠나. 군대나 김정은은 더 강경한 노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접 만난 북한 관료들의 성향과 스타일을 소개해달라.
“모두 미국 전문가들이다.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국을 잘 알며 미국 소설, 잡지뿐만 아니라 TV를 시청하고 인터넷에도 접속한다. 회담이나 접촉이 성사되면 매번 직함만 달리할 뿐 같은 사람이 나온다. 담당자들이 수시로 바뀌는 미국, 한국과 다른 점이다. 나는 북한 관료들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기에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들은 개방적이고 모든 상황을 잘 이해한다는 인상을 준다. 중동이나 중남미 정세까지도 꿰뚫어보는 등 똑똑한 엘리트들이다. 영어도 곧잘 한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4시간 만에 북한 지휘부를 제거하고 군사력을 무력화한다는 이른바 ‘4시간 플랜’이 일각에서 회자됐다. 이런 시나리오가 실체를 일부라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나?
“북한과 대화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은 완벽한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유형의 공격에 대비하고 다각도의 반격 방안을 강구했다고 본다. (미국이) 선제공격을 하게 되면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생길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이 몇 시간 안에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느냐와 별개로 대대적인 반격과 어마어마한 희생을 불러온다. 누가 이런 얘기를 내게 해줘서라기보다는 내가 그들과 대화하면서 받은 느낌이 그렇다.”

미국의 선제 공격 시 수백만 명 희생 불가피해

북한 핵이 북한 정권의 유지, 체제 안보가 아니라 미국의 개입을 막아 남한을 무력 통일하려는 수단이라는 일각의 견해를 어떻게 보나?
“근거가 없는 분석 같다. 김일성 사후 남북한 모두 평화공존의 기조 위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있지 않나. 나는 북한이 핵을 사용해 통일을 이루거나 남한을 공산화하려 든다는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북한 핵무기는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 하여금 평화협정에 서명토록 하는 방편이다. 또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방어하는 장치일 따름이다. 따라서 북한 핵은 통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북한이 늘 핵 문제는 남북의 이슈가 아니며 남한에 핵무기를 떨어뜨릴 의도가 없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양 상공에 헬리콥터를 띄워 촬영도 했는데 시가지 곳곳이 건설 경기로
들썩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킬힐까지는 아니지만 하이힐이 거리를 활보하고 패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이런 공식, 비공식 협상을 통해 북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궁극적인 ‘비핵화’로 가지 않고 ‘핵동결’ 선에서 멈추리라는 우려가 한국에서도 제기된다.
“답을 주기가 어렵다. 미국이 현재 정권교체라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추가적인 핵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평화협정 체결에 나설지, 안 나설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면 완전한 비핵화,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를 요구했을 것 같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참여정부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의견을 내기 전에 북한에 먼저 입장을 물어보자는 제안에 동의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이를 두고 한국의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기도 했는데.

“외교는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혹은 민간 차원이든 조용하게 이뤄지는 게 원칙이다. 고위급 외교관 출신 인사가 실명으로 관련자들을 지목한 것은 온당한 자세라고 하기 어렵다. 참여
정부 당시 북한과 상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왜냐하면 그때는 남북간에 교류가 많았기 때문이다.”

북한을 자주 방문한 입장에서 김정은은 어떤 인물로 평가하나?
“2012년 권력을 승계했으니 권좌에 오른 지도 5년이 다 돼간다. 정권을 잘 통제한다는 느낌이다. 라이벌이라고 할 인물들도 다 제거됐으니 말이다. 북한을 완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제기되는, 북한이 곧 붕괴된다는 소문은 근거가 약하다고 본다. 나라가 70년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망각해선 안 된다. 70년을 버텼다면 아무래도 망하기보다 지속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나. 그가 군대, 군사, 정부 등 북한의 권력을 확고히 틀어쥐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토니 남궁 박사는 “북한이 모든 유형의 공격에 대비하고 다각도의 반격 방안을 강구했다”고 말했다.

토니 남궁 박사는 “북한이 모든 유형의 공격에 대비하고 다각도의 반격 방안을 강구했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한민족의 현주소와 미래 지향점을 진단한다면.
“나는 미국, 중국,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살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다. 한민족은 세계 무대에서 자신에게 걸맞은 지위를 확보하질 못하고 있다. 7천만이라는 결코 작지 않은, 실은 큰 민족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강대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인다. 대대로 열강의 침략을 당한 약소국쯤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마인드가 안타깝다. 한민족 개개인의 능력은 탁월하며 일부는 특출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집단으로서는 매우 취약하다.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한반도는 이런 나라’라는 점을 전 세계가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평화와 번영, 공존의 틀이 필요하다.”

글 박성현·박지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사진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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