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1945.01.12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5년간의 미·소 신탁통치안이 가결됐다는 발표후 전국민은 격분하며 1946년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를 열었다. 특히 김구와 임시정부인사들은 시위의 선두에 나섰으며 광범위한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좌익 박헌영이 태도를바꾸며 좌우익 분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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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5년간의 미·소 신탁통치안이 가결됐다는 발표후 전국민은 격분하며 1946년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를 열었다. 특히 김구와 임시정부인사들은 시위의 선두에 나섰으며 광범위한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좌익 박헌영이 태도를바꾸며 좌우익 분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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