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환보유 다변화 달러 줄이기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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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미국 달러화의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중국.한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달러 자산의 보유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한 중국 등에서는 달러 대신 유로화나 엔화로 보유 외환의 구조를 다양화할 것이라는 주장이 시장에 계속 나오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주로 매입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달러 보유액을 줄이려면 미국 국채를 내다팔아야한다. 이 경우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투자와 소비가 줄어 미국 경기가 위축되는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이윤석 연구위원은 "외환 보유국들이 달러를 일시에 투매할 경우 미국 국채가격 폭락 등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급격한 달러 비중 축소 보다는 단계적인 조정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이 진원지=최근의 달러 표시 외환의 투매 가능성은 중국 쪽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

발단은 중국 후샤오롄(胡曉煉) 외환관리국장이 지난 10일 "보유외환의 자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외환투자 영역을 넓혀 나가겠다"고 말하면서 촉발됐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들은 이 발언을"인민은행이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경우 보유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중국이 달러 비중을 줄일 것"이란 뜻으로 보도했다.

이어 중국의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액이 1020억달러로 2004년에 비해 세배 가량 급증했다는 소식까지 더하면서 논란은 가열됐다.

중국의 지난해말 외환보유액은 8200억달러(추정치)이며 이 가운데 2500억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포함해 전체의 약 75%가 달러표시 자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 달러약세 효과'로 달러 약세가 진행되던 와중에 중국 쪽에서 들려온 얘기들은 달러의 추가 하락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파문이 커지자 중국 인민은행은 "다른 자산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 달러 비중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블룸버그 통신이 11일 중국의 보유외환 비중의 조정 가능성을 담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비공개 보고서를 보도하면서 또다시 불씨를 지피고 있다.

블룸버그는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이 보유 외환을 달러에서 다른 통화로 바꾸는 방향으로 외환 정책을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하는 조짐이 있다"며 "이런 정책이 현실로 나타날 경우 달러 약세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대량 매도 가능성은 낮아=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달러표시 자산의 대량 매도 사태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달러 투매가 벌어지면 국제 금융시장에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켜 중국 뿐아니라 누구에게도 이로울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달러 매도 유혹은 달러가 약세를 보일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이슈라는 지적도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아시아 주요국가의 중앙은행들로선 달러 약세 때문에 앉아서 손해보는 상황이 부담스러워 달러 비중 축소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2월 한국은행은 '(약세를 보이는 달러가 아닌) 고수익 통화로 외환보유 구조를 다변화해 수익성을 높혀보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국회 보고자료가 외신에 보도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 채권 매도로 금리가 뛰고 미국의 투자와 소비가 줄어 경기가 위축되면 미국 시장에 수출을 많이 하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궁극적으로 이로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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