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목적만 좋다고 박수 안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요즘 몇사람이라도 모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정부가 최근 발표한 농어촌부채경감대책이 화제로 오르고있다.
발표된지 근1주일이 지나도록 시중의 화제거리가 되고있는 것은 내용의 파격성과 함께 정책의 접근방식, 그리고 대책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인것 같다.
더러는 『역시 이 정부니까 할수 있는 과감하고도 결단성 있는 조치』 라고 평가한다. 또 더러는『그렇게 해도 괜찮은 건가. 곧 총선거를 치르려고 하는것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우End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왜 하필 이 시점에 정부가 서둘러 그러한 대책을 마련한 것인가에 의문을 던지면서 어깼거나 돈이 많이 풀릴 것이므로 인플레가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1조원을 방출, 사채를 갚게하고 농어민이 쓰는 자금의 금리를 일반 금리보다 일거에 3∼4%포인트씩, 어떤 것은 이자를 전부 탕감해주겠다고 하니 그 결단성을 사지 않을 수 없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으론 그 결단이 몰고 올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지도 모른다.
대책이 발표된 직후 통화책임부처와 예산책임부처의 실무관리들이 「장관이 합의한 사항이지 우리는 모르는 일』 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라든지, 뒤늦게 발견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 때문에 관계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얘기들은 시중 장삼이사들 못지 않게 정부 내에서도 시각이 엇갈리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그런가하면 정부가 한번 큰맘 먹고 선심을 베푼 것인데 시중여론으로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오지 않은데 대해『담당부처가 홍보를 잘못해서 그런것 아니냐』 고 상부로부터 심하게 추궁을 당했다는 후문도 있다.
농촌이나 어촌에 가서 얘기를 듣고 실정을 들여다보면 적어도 이번 농어촌대책을 놓고 정부가 불필요한일을 했다거나 지원내용이 지나쳤다고는 시비를 걸 수 없게 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60세를 넘어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네들 아니면 아녀자들이 주로 농사일을 하고 있는 실정, 그리고 대부분의 영세 농어가가 해마다 늘어만가는 부채로 인해 한숨 짓고 있는 현실은 오히려 발표된 지원대책조차 부족하다고 할만하다.
또 한편 부실기업을 정리한답시고 한기업에 수천억원씩 쓸어넣으면서 농어촌의 어려운 사정을 외면하는 것은 국가정책의 도덕성이나 균형면에서도문제가 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농어민들이 허리를 펴고 웃음을 되찾는 살기 좋은 농어촌을 만드는 일에 누군들 반대하고 시샘하겠는가.
아무리 수출에 의존하고 공업입국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수천년간 우리네 마음의 고향이자 생활의 젖줄인 농어촌을 결코 소홀히 할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전제는 우리뿐 아니라 선진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획기적인 이번 농어촌대책에 대해 시중여론이 유보 없는 박수갈채를 못보내는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나 생각된다.
우선 정책의 접근방식과 경사성을 지적할 수 있다. 농어촌의 오늘날 긴급 수혈을 해야할 만큼 사태가 악화된 원인이 무엇이며, 이를 개선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치유책은 어떤 것인가를 가려내고 그동안의 농정실패에 대한 반성과 검토가 앞섰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껏 저곡가 정책 위에서 물가안정을 추구해온 탓으로 농촌의 소득기반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것이고, 비교우위론에 밀러 농업진흥이 외면당해온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년 내내 농사를 지어봐야 생산비도 건지기 힘들게 구조화된 상태에서는 이농이 늘어나고 농어가는 빚 수령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 와서 느닷없이 농어촌이 4조2천억원의 빚을 지고 있으며 그중 사채가 1조원을 넘는다면서 거창한 부채경감대책을 내놓았으니 얼떨떨해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마련할 때는, 특히 그것이 대규모이고 충격적인 것일수록 경제적 비용과 효과성, 그리고 다른 정책목표와의 조화를 따져보아야 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사전대비가 있어야함은 하나의 상식이다.
해외부문에서의 증발뿐 아니라 올해 예정되어 있는 총선거를 전후한 통화수요를 감안할 때 과연 일거에 엄청난 돈을 푸는 방법밖에 없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통화와 재정부문을 맡고 있는 관리들이 이번 조치에 대해 앙앙부악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생각을 동감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또 시행상에 있어서 사채대환의 지원을 받게될 대상자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할 것인지, 지원자금의 효율성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지등에 대한 충분하고도 세밀한 검토가 부족했음을 드러냈다.
그뿐 아니다. 열심히 절약해서 사는 사람보다 낭비적인 사람-물론 농어민 부채의 경우 불가피하게 빚을진 것이 대부분이겠지만-이 혜택을 받는 정책의 부조리성, 그리고 도시 영세민에 대한 정책의 균형 문제등 이번조치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문제점들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러울 정도다.
지난 70년대 중화학공업·해외건설·해운산업의 육성에서 전형적으로 경험했듯이 우리정부는 일단 하나의 목표가 정해지면 집중호우식 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정책이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오늘날 부실기업의 정리에서 보듯이 엄컹난 국민경제적 .부담을 수반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대책이 혹시라도 패턴을 같이 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한다면 기우일 것인지. 모든 정책은 그때그때 순리대로 문제를 풀어가는 접근방식을 써야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사리와 의문 때문에 농어민의 어려운 사정을 덜어주려고 내놓은 획기적인 대책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정책은 목적만 좋다고 해서 합리화 될수 없는 일이다. 「최선」 의 선택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수단의 정당성을 갖추어야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