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태백산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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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역사는 정직하다. 우리가 특정한 사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이전에 이미 역사는 하나의 의미로서 우리를 규제하고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이러한 역사의 속성을 염두에 두고 창작되었다는 점에서 일단은 흥미롭다. 분단에 의해 방기되었던 역사의 일면 (여순 반란 사건)을 우리의 전면에 부각시키고자 하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냉혹하기도 하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 피해자다. 이념에 의해 인간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사건의 주도자들이나 사건과는 무관한 수동적인 인물들이 모두 사건에 의해 피해를 본다. 이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존재 방식을 인간과 이념의 관계를 통해 제시하고 질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에게 이념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의 이념이 현실과 갈등하면서 야기시키는 인간에의 피해를 답변으로 제시한 것이다.
역사는 인간적이다. 이념에 의한 피해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한이며, 정열이며, 혼의다.
인간은 이념적이기 이전에 삶, 그 자체를 살아간다.
우리에게 이념에 대한 설명을 하는 인물들보다 삶의 논리에 따라 울고 웃고 또는 회의하는 인물의 면면이 친숙한 이유는 역사가 삶, 그 자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작가는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단지 재미로 서술하기보다 우리 시대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성을 다양한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각자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역사는 정직하고, 냉혹하고, 인간적이다. 신재훈<서울 강동구 신천동·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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