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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전시회·발표회 “사업은 언제 하냐” 제 발로 나가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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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국 창조혁신센터는 지금 사실상 개점휴업 창업의 요람

전국 17곳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직접 돌아보니 온도 차는 뚜렷했다. 경기(판교)·대전 등 일부를 빼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21일 전남 나주시의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제2센터 사무실. 지난 4일 개소식이 연기되며 집기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21일 전남 나주시의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제2센터 사무실. 지난 4일 개소식이 연기되며 집기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썰렁한 분위기는 뚜렷했다. 14일 방문한 전북 전주시 효자동의 전북센터도 그랬다. 센터를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원스톱 서비스 창구’는 텅 비어 있었다. 분위기도 무거웠다. 전북도가 센터 관련 예산을 원안 23억원에서 10억원으로 삭감해 도의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달돼서다. 김진수 전북센터장은 “내년에 창업지원 포털과 농·생명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려 했는데 사업이 줄줄이 보류됐다”며 “사업이 위축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창업 지원부대 모아놔야 효과 큰데
전국 17곳에 무조건 할당한 게 문제”
정부가 대기업 등떠밀어 생색 내기
“지원 끊기면 자생력 있는 곳만 생존”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유난히 썰렁해지는 센터 분위기는 우연이 아니다. 일단 요즘 창업에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꼽히는 소프트웨어(SW) 개발자가 지역에 많지 않다.

한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관계자는 “개발자 남방한계선이 판교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들도 네트워크와 개발 환경을 중시하기 때문에 영호남에서 창업하라고 등을 떠민다고 내려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대표는 “기반이 없는 도시에 갑자기 센터를 지어놓고 창업할 이들을 모은다고 한들 제대로 운영되기가 쉽겠느냐”며 “지역센터 지원을 받기 위해 본사 주소만 그곳에 두고 실제 업무는 서울에서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지역 창업 수요나 자원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지역별로 센터를 할당해서 나온 폐해”라고 지적한다. 창업 시장이 잘되려면 창업자들이 한곳에 모이고 돈을 대는 금융사, 컨설팅 및 인재 공급을 지원하는 조력 부대들이 얽혀 규모의 경제를 형성해야 하는데 작은 땅덩어리에 17개나 되는 센터를 흩어놓은 게 문제란 얘기다. 이 교수는 “훨씬 땅이 큰 미국에서도 실리콘밸리나 보스턴 등 몇몇 도시에서만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창업 활성화를 민간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대기업을 등 떠밀어 생색 내기식 사업을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민화 창조경제이사회 이사장은 “민간에도 창업 지원센터가 많은데 정부가 중복되는 업무를 한다” 고 지적했다.

1년에 두 차례 있는 창조경제 관련 정부 행사와 지역센터의 각종 부대 행사에 입주 기업이 동원되는 등 전시 행정도 도마에 올랐다. 한 민간 창업지원센터 관계자는 “8월 창조경제 페스티벌엔 ‘대통령이 오니 센터별로 무조건 100명씩 동원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들었다. 한 입주 기업은 발표회며 전시회에 쫓아다니느라 내 사업 키울 시간이 없다며 제 발로 (센터에서)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거의 모든 직원을 계약직으로 뽑는 등 파행 운영의 싹이 보이기도 했다. 인천센터의 경우 35명의 센터 직원 중 정규직은 3명뿐이다. 나머지는 계약직 내지 후원 기업(한진· KT)의 파견 인력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억지스러운 정부 지원이 끊어지면 오히려 자생력을 가진 센터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경호·황선윤·위성욱·최은경·김준희·김호·최충일 기자 (이상 내셔널부)
임미진·최영진·박수련·김경미·김기환·유부혁 기자 (이상 산업부)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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