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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촛불집회] “누구는 말 한 마리 사 명문대생 돼 … ” 수능 마친 고3 가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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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민들은 경찰버스로 세워진 차벽에 꽃그림 스티커를 붙이며 평화집회를 강조했다.

1 시민들은 경찰버스로 세워진 차벽에 꽃그림 스티커를 붙이며 평화집회를 강조했다.

2, 3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17일) 발언이 나온 뒤 열린 19일 촛불집회엔 ‘스마트폰 촛불’‘인간 촛불’이 등장했다. 4 저승사자 복장으로 집회에 참석한 시민. 김성룡?김경록 기자, [AP=뉴시스]

2, 3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17일) 발언이 나온 뒤 열린 19일 촛불집회엔 ‘스마트폰 촛불’‘인간 촛불’이 등장했다. 4 저승사자 복장으로 집회에 참석한 시민. 김성룡?김경록 기자, [AP=뉴시스]

“왜 내 눈앞에 나타나. 왜 네가 자꾸 나타나….”

보수 맞불 집회 … 폭력 없는 평화 시위

19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광장. 노래 가사가 흘러나오자 이곳에 모인 시민들 사이에선 폭소가 터졌다. 여기저기서 따라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6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제가 ‘나타나’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드라마 여자 주인공 이름인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서울 청담동 차움의원을 이용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을 풍자한 것이다.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 1503개가 연대한 ‘박근혜 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시위를 연 이날 전국적으로 95만 명(경찰 추산 24만 명)이 시위에 동참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3 수험생 등 젊은 층이 대거 모여들면서 시위 분위기는 한층 더 밝고 발랄해졌다.

이날 광화문광장 등 서울에서만 60만 명(경찰 추산 18만 명)이 모였다. 중학교 2학년인 전종호(14)군은 “게임만 하던 학교 친구들이 뉴스를 찾아보고 있다. 친구들과 제가 떳떳하게 우리나라를 자랑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가수 전인권씨가 자신의 노래 ‘행진’을 부르는 것으로 본 집회가 마무리된 오후 7시30분 시위대는 종로·창덕궁 등 8개 경로로 행진했다. 청와대와 900m 거리인 내자동 로터리 인근에는 시민 6000여 명이 모였다. 경찰과 대치한 시민들은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구호를 끝없이 외쳤다.

일부 시민이 “차벽을 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날도 평화시위 기조는 이어졌다. 선두에 선 시민들은 저지선에 서 있는 경찰관이 들고 있는 방패에 노란 국화를 꽂아주기도 했다. 꽃 그림 스티커를 경찰 기동대 차량에 붙이는 시민도 많았다. 내자동 로터리 인근 경찰 차량 9대는 시민들이 붙인 스티커로 인해 ‘꽃 차벽’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차벽 앞에서 셀카를 찍던 고등학교 2학년인 최수민(17)양은 “집회 인증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광주 5·18 민주광장에 6만여 명(경찰 추산 2만여 명)이 참여한 것을 비롯해 부산·대구·대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35만 명이 참여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진행된 횃불 시위가 재현됐다. 시민 50여 명이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횃불을 들고 선 가운데 출정가 제창과 시국선언문 낭독이 이어졌다. 이날은 또 초·중·고교생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 등 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광주 집회장을 찾은 학생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이석빈(15·중2)군은 “대통령이 국민의 세금으로 전 세계를 빙빙 돌아다니더니 머리가 돈 것 같다”며 “해외 순방에 국민의 혈세 수십억원씩을 펑펑 써대는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말했다.

각종 특혜를 받아 이화여대에 입학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등을 겨냥한 분노의 목소리도 쏟아냈다. 지난 17일 수능시험을 본 김민철(18·고3)군은 “누구는 죽어라 공부를 하는데 누구는 말 한 마리만 사면 명문대생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분통이 터져 집회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경찰 추산 1만여 명)이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이날 오후 5시 사전집회를 시작으로 서면 쥬디스태화백화점 등에서 ‘박근혜 하야 10만 부산 시국대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대통령 하야·퇴진’ ‘이게 나라냐’ ‘박근혜 대통령을 사법처리하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하야’ 구호를 일제히 외쳤다. 수능을 마친 고3 학생 등 청소년들은 ‘청소년이 주인이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나왔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도 많았다.

대전에서는 둔산동 타임월드 인근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대전 10만 시국대회’가 열렸다. 시민 1만5000여 명(경찰 추산 5500명)은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새누리당 해체’ ‘이게 나라냐’ ‘재벌도 공범’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수능을 마치고 친구들과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김윤석(18)군은 “그동안 나오고 싶었지만 수능 때문에 참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본인의 잘못을 모르는 것 같아 학생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세종시 호수공원에서도 오후 5시30분부터 시민 1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촛불집회가 열렸다.

충북 청주에서는 오후 5시 충북도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1만 명(경찰 추산 4500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도로에 앉은 시민들은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분노를 드러냈다. 임예성(17)군은 “대통령은 검찰 조사와 특검 수사에 성실히 응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는 춘천시 석사동 로데오 사거리 등에서 촛불시위가 열렸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LED촛불 시위를 벌였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는 김진태 의원의 발언에 꺼지지 않는 LED촛불을 들고 나왔다. 김준성(50)씨는 “김 의원의 촛불 발언에 화가 나 1000원짜리 LED촛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도 광주시 퇴촌면을 비롯해 수원·성남·화성·시흥·군포·오산 등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19일 오후 5시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사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국민주권 경기운동본부’ 발대식과 ‘수원시민 촛불문화제’가 잇따라 열렸다. 시민들은 ‘수원시민 열 받았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헌법 파괴 국기문란 박근혜 퇴진’ ‘국민의 뜻이다 박근혜 퇴진’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제주도에서는 역대 촛불집회 중 최대 규모인 6000여 명(경찰 추산 20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오후 6시 제주도 내 103개 단체로 구성된 ‘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은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 도로에서 ‘박근혜 하야 촉구 5차 제주도민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촛불집회 인원은 2000년대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집회로 꼽힌다. 시민과 학생들은 쌀쌀한 날씨에 아랑곳 않고 가족이나 친구들의 손을 잡고 촛불시위장으로 향했다. 이날 촛불시위를 주도한 주요 도시의 인사 3명에게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광주=“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이 담긴 광주 촛불집회는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박근혜 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의 공동대표로 활동 중인 은우근(59)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이 하야나 검찰 조사는 미룬 채 부산 엘시티 비리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지시하는 것 등에 국민들이 조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며 “시민 모두가 훼손된 민주주의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불공정한 사회현상에 치를 떨고 있다”고 했다.

▶대구=“대구에서의 집회 참가자 수만 봐도 깜짝 놀랄 사건입니다.”

대구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집회를 주관하는 서승엽(52) 대구시민단체연대회 운영위원장은 대구 지역 70여 단체가 모인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대구비상시국회의’의 총괄책임자다.

서 위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몰표를 준 대구가 이 정도면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지 않으냐”고 했다. 박 대통령이 ‘대구 정서’를 정면으로 거슬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칙이 통하는 반듯한 나라를 만들 것으로 믿고 대구시민이 박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실체를 보면서 믿음은 배신감과 분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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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최순실 국정 농단’이 아니라 ‘박근혜 국정 농단’입니다.”

‘박근혜 퇴진 대전운동본부’를 주도하고 있는 김종서(56) 배재대 공무원법학과 교수는 “촛불집회에 어른은 물론이고 초·중·고교생까지 대거 참석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직책과 책임도 없는 최순실이라는 여자에게 권력을 넘겨 사유화한 것에 가장 크게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대구·대전=최경호·홍권삼·김방현 기자,
채승기·전민희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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