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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리본 떼라'…정부, 교황 방한 정치적 활용 시도

중앙일보

입력

청와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때 북한 문제를 부각해 세월호 이슈를 덮으려고 한 정황이 포착됐다.

교황의 방한을 비판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을 우려했던 정부가 오히려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걸 드러낸 셈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7일 JTBC 뉴스룸이 단독 입수해 보도한 국정원의 청와대 보고서에 이런 정황이 담겨 있었다.

문건에는 '교황청ㆍ외신 대상으로 사전 北 주민 인권상황ㆍ경제난 실태 등 풍부한 참고 자료를 제공, 한반도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견인'한다고 적혀 있다.

'2014년 하반기 국정운영 관련 제언'이란 제목의 33쪽짜리 이 보고서는 여론 동향과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을 담고 있다.

2014년 6월 19일에서 27일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호 참사가 난 지 두 달쯤 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해 8월 14~18일 방한했다.

이 보고서에는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로 치부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비판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정부가 이 보고서의 내용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월호 관여를 막으려 시도한 정황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8월 18일 방한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고서 한나절이 지나자 누군가 오더니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리본을 떼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교황은 그러나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며 이를 거부한 일화를 공개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때에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또 희생자 유족들을 직접 만나 위로하기도 했다.

교황은 북한과 관련한 언급도 했지만 북한의 인권과 경제난에 대해 언급해주길 바랐던 정부의 '기대'와 달랐다.

교황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많은 이산가족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단이 낳은 고통"이라며 "나는 분단의 고통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것이 끝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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