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report] 서비스업 키운다는 정부 아직은 립서비스 단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올해 초 정부는 ‘공유숙박업’ 양성 계획을 세웠다. 전체 바닥면적 230㎡(70평) 미만 집이나 일부 방을 연간 180일까지 숙박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통해 숙박업자가 아니더라도 모바일 플랫폼으로 여행자에게 자신의 빈방이나 집을 빌려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판 ‘에어비앤비’를 육성해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제주·강원·부산 등 ‘스마트관광’을 전략산업으로 택한 곳에 규제프리존을 세워 이러한 공유숙박업 시범사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획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지난해에 이어 5월 다시 발의된 규제프리존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정부는 내년 3월 ‘공유숙박업’을 합법화하는 숙박업법(가칭)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불투명하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과 ‘고용의 원천’으로 서비스 산업을 지목했다. 지난 7월엔 ‘서비스경제 발전전략’까지 발표했다. 전략엔 2020년까지 서비스 산업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이를 통해 2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세제개편을 확대하고 의료·관광·콘텐츠·교육·금융·소프트웨어·물류를 7대 유망서비스업으로 꼽아 육성한다는 것이 골자다. 16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전략 추진 성과를 점검했다.

서비스업 생산성 OECD 최하위권
정부 “4년 내 일자리 25만 개 창출”
원격의료·공유숙박·핀테크 등
정치권 반발에 법 개정 안돼 지연

정부 스스로도 아직 국민이 체감할 정도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원격의료나 공유숙박업, 인터넷은행 등 핵심 분야에서 지지부진했던 탓이 크다. 규제완화·지원확대 방안을 내놨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건 관련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이다. 하지만 많은 법안이 야당 반발 등으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이 9월 말 271개로 지난해 말(148개)보다 2배 정도로 늘었다. 하지만 정식 사업화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해서다. 핀테크 산업 발전을 위해 인터넷은행의 지분소유 한도를 완화(4%→50%)하는 은행법 개정안, 한국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국회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부의 책임도 있다. 정부는 발전 전략에서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법령 체계를 개편한다고 했지만 관광진흥법 개정안과 관광산업법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내년에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최순실 게이트’ 영향으로 계획대로 될 지 불투명하다.

물론 일부 성과도 있다. 이번 달부터 안경·렌즈를 맞출때 시력 검사를 했다면 물건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는 개설 강좌 수가 140개로 확대됐다. 드론 상용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번 달 강원 영월에서 드론 물류 배송 시범서비스가 시작됐다.

서비스업 발전은 한국 경제에 필수 과제다. 제조업을 무기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올랐지만 이제 제조업만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 조선·해운업 등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의 1인당 서비스산업 노동생산성은 2013년 기준 4만7000달러로 OECD 26개 국가 중 21위로 최하위권이다. 국내 서비스업은 음식·숙박 같은 ‘저부가가치 산업’ 위주다. 2013년 현재 서비스업 중 유통·운수·음식·숙박업의 고용 비중은 28.1%로 주요 7개국(G7·24.3%)이나 OECD(24.7%) 회원국보다 높다.

반면 전문·과학·관리·지원(8.8%)과 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의 고용 비중은 주요국보다 4∼5%포인트 낮다. 정부가 의료·관광 등 유망 서비스산업을 키우겠다고 나선 이유다. 이들 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고용 창출 효과도 커 ‘고용 불황’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의 매출 1조원당 고용은 482명이지만 서비스업을 하는 계열사 신라호텔은 4686명이나 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의료, 소프트웨어와 같이 한국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서비스산업을 키워야 안정적인 성장과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요도가 높은 핵심 과제를 선별해 우선적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법안의 국회 통과가 필요한 경우 각 부처가 합동으로 의원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다음달에는 ‘중장기 서비스 연구개발(R&D) 정책방향’을 수립해 산업계 수요를 고려한 R&D 투자방안도 발표한다. 강기룡 기재부 서비스경제과장은 “국민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과제를 더 발굴하고 서비스업 발전전략도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정부 신뢰가 떨어졌고, 리더십 공백으로 추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관련법안이 통과되려면 정치권과 긴밀히 소통해 법안 이견에 대해 수정·보완작업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경제부총리 임명 등으로 컨트롤 타워를 재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종=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