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자의 착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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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 우리 사회는 체제변혁을 놓고 심각한 분쟁과 대결의 상태에 있다. 이 같은 분열과 혼란은 적대세력이 이용하려 들기 위한 취약상태임에 틀림 없다.
바로 이런 때에 검찰은 김일성 혁명이론으로 무장하여 반미·공격혁명을 기도했던 13명을 구속하고 3명을 입건, 24명을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작년 3월 이후「5·3인천사태」를 포함하여 각종 극렬 시위와 옥내농성 사건을 주도하거나 배후 조종한 인물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주로 평양의 이론을 원용한 각종 지하 유인물을 만들어 학교와 공단지역에 배포하며 의식화운동을 확대해 왔다.
그들은 방위법 출신들을 규합하여「법사혁명운동조」 까지 만들어 기반조직으로 관리해 왔다.
따라서 이들에 적용된 죄목도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구성죄다.
관련자들은 대학생으로부터 대학강사·기자·종교계인사·출판사 편집원 등 지식 청년들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비록 평양과의 연계는 기도했지만 성사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전에도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설마 하는 미련을 가지고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왔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보면 이 들은 노동현장에서 소요가 일어나면 「도시 게릴라전」 을 전개하고, 다른 한편에선 「병사 혁명운동조」를 만들어 관리하며 친북괴 반미 공산혁명을 꾀했다. 이들은 음모가 실패하면 북으로 도망가는 방법까지도 모의했다. 그 주장이나 이념은 차치하고라도 그런 발상 자체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들의 의식수준이 의심스럽다. 몽유병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들은 북괴와의 연계 선상에서 이런 음모를 한 것이 아니고, 자생적인 「친북 반미주의자」 들이라는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불행한 사건들은 양극화상태에 있는 우리 사회의 지나친 갈등에서 빚어지고 있다. 양측이 너무나 극렬히 대립하다 보면 수단의 선택에 무리를 범하게 되는 법이다.
지금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안전을 지켜가며 계속적인 성장을 이룩하려면 대미우호를 기본 축으로 하는 지금의 대외관계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믿을만한 대안 없이 지금의 대외질서를 던져버릴 때 우리에게 닥쳐올 불안과 소요를 생각한다면 건전한 양식으로는 반미를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운동권의 대 정부 투쟁도 평양과 연계한다든지 공산주의를 도입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규탄을 면키 어렵다.
우리가 오늘의 발전을 가져온 것은 밖으로는 미국을 지도국가로 하는 서방세계의 일원으로서 국제협력을 추구하고 안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 관련자들의 잘잘못은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반미 공산혁명기도 자체는 묵과될 수 없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이것만은 명백하다. 즉 비미는 가능해도 반미는 안 되고, 지공은 필요해도 친공은 용서할 수 없다.
이것은 나라를 걱정하는 책임있는 국민들 사이에 합의돼 있는 하나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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