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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비슷하변 굴비로 둔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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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봄철 입맛을 잃었을때 밥상에 올려지던 굴비맛은 이제 보통 사람들에게는 옛말일뿐이다.
특상품이라곤 해도 굴비10마리 한두름이 20만원을 홋가하고 웬만큼 큰 굵기의 굴비가 8만∼9만원씩 하는세상이니 입맛이 없다고 굴비를 찾는 일은 대단한 사치가 아닐수없는 상황이다.
물론 20마리 한두름에 1만∼2만원하는 굴비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이는 종류도, 말리는 방법도 예전 굴비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제대로 된 굴비는 산란하기 1∼2개월전에 알이 통통하게 배어 아랫배가 노란색을 띤 참조기를 잡아 여러날 소금 간을 하고 매달아 말린 것이다.
흔히 굴비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영광굴비는 4월하순 곡우사리때 법성포앞 칠산바다에서 잡은 것을 바람과 습도조건이 알맞은 법성포에서 소금물로 물간을 하고 건조대에 엮어 걸어 바닷바람에 1주일이상 말려 만들어낸 것이다.
요즈음에 나도는 굴비들도 영광굴비 아니란 것이 없는 상태지만 실제로 앞서 말한 본래의미의 영광굴비는 사라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칠산앞바다까지 올라오는 조기가 거의 없기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영광굴비라고하면 동지나해나 추자도·홍도·흑산도 근해에서 잡은 참조기를 사다 법경포에서 말린것을 얘기한다. 보다 넓게보아 어디서 어떻게 말렸건 참조기로 만든 것은 모두 제대로 된 굴비라고 보더라도 서울에서 굴비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물량중 이처럼 참조기로 된것은 10%미만으로 봐야할것이라는게 중부건해산물주식회사 김상혹영업이사의 얘기다.
나머지는 이른바 부세나 보구치 (백조기)·수조기(반어)등을 일단 냉동해 두었다가 해동시겨 소금물에 하루쯤 담갔다 말려파는 것이다.
굴비를 찾는 사람이 줄긴했어도 아직 많은데다 참조기생산량은 워낙 미미해 수요에 맞추어 공급을 할수없고 또 가격도 워낙 비싸지다보니 참조기를 닮은것들이 모두 굴비로 둔갑하고 있는셈이다.
유통과정을 보면 참조기로된 굴비는 한마디로 비쌀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지난 한got동안 영광에서 생산된 굴비는 6만∼7만두름에 불과하다. 물론 앞서말했듯 칠산바다에서 잡은것이 아닌 외지에서 사다 말린 것들이다. 어찌됐건 이것은 영광굴비라 볼수 있다.
이 영광굴비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특상품의 현지시세가 10마리 두름당 20만원 이상하며 길이가 1자정도 되는것이 8만원쯤 한다. 이보다작은것은 4만∼4만5천원선. 아주 잔것은 더 싼것도 있지만 20마리에 2만원미만짜리는 현지에서 취급이 안된다.
굴비의 유통단계는 비교적 간단하다.
어부가 잡은 생조기를 공판장에 내오면 이를 상인둘이 사다 대부분 직접 또는 위탁가공해 직접 팔거나 중간상 1단계를 더 거쳐 소비자 손에 들어온다.
법성포에서 굴비를 직접 말려 팔고있는 배련수씨 (41·우리상회)는 최근 추자도 공판장에서 참조기를 50마리 1상자에 27만원썩 주고 샀다. 여기에 공판장에 내는 수수료 4%와 법성포까지의 운임까지 따지면 30만원이 먹혔다. 또 간을 맞추기 위한 소금값과 품값을 합치면 조금 더 먹힌다.
패씨는 이를 큰것과 작은것으로 나누어 따로 묶어 파는데 큰것 3두름에 8만원씩, 작은것 2두름에 4만5천원씩 받고 있다. 따라서 50마리 1상자를 팔면 33만원정도가 된다. 굴비가 비싼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남는 마진이 적은 셈이다.
이는 중간상에 넘기는 가격이고 소비자가 직접 내려가서 구하려면 두름당 5천∼1만원은 더 주어야 한다.
일단 중간상에 넘어가면 이들은 10%쯤의 이윤을 붙여 산매상에게 팔고 산매상은 보통 10∼20%의 마진을소비자에게 판다.
백화점의 경우 대부분 영광 현지의 상인들과 직거래를 트고 있는데 보통 25%정도의 마진이 붙는다.
결국 생조기가 어부의 손을 떠나 굴비로 되어 서울소비자에게 오기까지는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50∼70%경도의 유통마진이 덧붙여지는셈이다. 물론 여기에는수수료나 부대비용이 포함된것이다.
서울의 건어물 도매시장인 중부시장에서도 팔리는 가격은 대체로 비슷하다. 오히려 서울시장에서 사다가 영광으로 가 영광굴비로 둔갑하는 사례도 없지 않으리란게 이쪽 상인들의 주장이다. 도매상들은 대부분 수수료를 주고 위탁가공을 해 판매하때문에 현지와 큰차이가 있을수 없다.
요즘 팔리는것은 지난해 잡아 비축해둔것들. 작년에는 50마리 1상자짜리가 이맘때 26만∼27만원 정도했는데 요즘 이중 굵은것이 두름에 8만원, 이보다 다소 작은 것은5만∼6만원정도의 시세가 형성되었다.
1상자에 l백80∼2백마리 들어가는 잔것은 9만∼11만원인데 두름에 1만원정도한다.
상인들이 직접 사다 말려 파는 경우도 있지만 대형엄자들이 대규모로 사두었다가 시기를 보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유통단계는 1단계가 더 생기는 셈인데 이것도 7O년대 중반까지 얘기지 요즘은 워낙 잡히는게 없고 마진도 좋지않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게 판매상들의 얘기다.
중부시장 D수산의 송모씨는 2O만원짜리 굴비가 있다고하지만 일부 특상품이 있을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바가지라고 잘라말한다.
자칫 턱없이 영광굴비만 찾다가는 씨알도 굵고 모양도 비슷한 부세에 치자물을 들인 굴비를 엄청난 값에 살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지난해 법성포수협에 들어온 참조기는 12t에 불과한데 이는 굴비로 따지면 약2전5백두름밖에 안된다. 그러니 값이 비쌀 수밖에없다. 진짜 영광굴비라면 20만원을 홋가해도 무방할는지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보통사람이 정말로 칠산바다에서 잡힌 참조기로 만든 굴비를 구별할 방법도 없고, 설사 구별한다해도 물량자체가 극소량인데다 웬만한 사람 월급과 맞먹는 돈을 주고 「진짜영광굴비」를 찾는것은 사치 이전에 난센스다.
제대로 된 굴비를 정 먹고싶다해도 8만∼9만원짜리「영광굴비」면 과분하고 아예 속편하게 20마리 1두름에1만∼2만원정도하는「굴비」를 사다먹는게 나을일인지도 모르겠다.

<박태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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