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공전하는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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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계절이 바뀌어도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소식엔 시원하고 고무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18일의 3당 대표회담에서 임시국회의 조속한 소집, 국민 여망에 부응한 정국운영등에 합의했다는 발표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것 같지는 않다.
합의사항가운데 헌특의 조속한 정상가동에 노력한다는 대목에 대해 민정당은 『당대 당의합의』로 치부하고 이 기구의 가동에 박차를 가할 움직임이다.
그러나 신민당은 이 부분의 합의는 원론적이고 맹언적인 의미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못박음으로써 현실적으로 별다른 구실을 못하게된 것이다.
대표회담의 합의사항이 이처럼 정국타개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간단하다. 공식적인 당기구가 여야를 불문, 「실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이른바 「이민우구상」의 무산과정을 통해 야당총재의 운신과 재량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아무리 주장이 타당하고 합리성을 띠고 있다해도 뒤에있는 양 김씨가 거부하면 성사가 되지 않는다. 어떻든 그것은 현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여당쪽 사정 역시 비슷하다. 대국민 창구역할을 해야하는 집권당으로서 나름대로 민의를 수렴, 시책에 반영하려해도 여권안에 이론이 있거나 정부가 이를 수용하는데 주저하면 무위가 되고만다.
이처럼 3당 대표회담의 4개항 합의가 정국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전후경과를 돌이켜 보면서 우리는 또 한번 이나라정치는 어디로 갈것인지 걱정을 하게된다.
전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는 이제 꼭 1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에 해야할 일은 문자 그대로 태산처럼 많다. 개헌과 국민투표를 해야하고 이어서 선거도 치러야한다. 거기에 따른 부수입법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촌음을 아껴써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다고 해서 순리를 따르지 않고 어떤 무리를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개헌이 88년까지의 정치일정을 소화하는데 그치지않고 이나라 민주발전을 담보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입이 아프도록 지적한 말이지만 이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대화며 타협이다.
비록 타협이 불가능에 가깝다하더라도 이를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정치가 단기적인 승부가 아니고 보다 먼 장래를 내다본 활동일진대 왜 여야가 그처럼 목전의 이해에만 매달려 정치력을 보이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지금 국민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것은 개헌 못지않게 민주화다. 민주화는 권력을 잡은 쪽에서 권력을 나눠주고 양보하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그런 뜻에서 정부· 여당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민주화에대한 확고한 실천의지부터 보여야한다. 민주화를 한다면서 구속자수가 오히려 늘어나고 박군사건, 복지원사건과 같은 인권유린 사태가 계속된다면 정부· 여당에 대한 불신은 증폭되고 그것이 두고두고 여당쪽 부담으로 돌아갈것은 분명하다.
야권 또한 경직된 강경 투쟁노선에서 탈피해야한다. 한꺼번에 모든것을 다얻으려는 완승논리는 작용과 반작용의 악순환을 부를 위험성이 아주 높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헌특문제에 관한 3당대표합의사항의 「공전」은 여야가 진정 타협을 통해 정국을 풀 요량이라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본다. 여당은 이민우 총재만을 상대로한 고식적인 대화노력을 펴지만 말고 보다 대국적인 시각에서 정국타개의 방안을 찾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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