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여가부를 폐지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여성가족부 장관 굴욕 시대다. 박근혜 정부의 첫 여가부 장관을 지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김희정 전 장관과 강은희 현 장관까지 줄줄이 망신살이 뻗쳤다. 특히 김희정·강은희 두 사람은 2014년 의원 시절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적극적으로 비호한 덕분에 장관에 발탁됐다’는 세간의 의혹에 시달리며 사과에 눈물까지 쏟아야 했다.

장관 자리를 둘러싼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대체 여가부가 뭘 하는 부처이기에 장관 자리 하나가 더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 말이다. 보건복지부가 얼마든지 해도 될 업무라는 지적만 잠시 잊는다면 여성 권익 증진과 청소년 보호, 그리고 여성·아동·청소년을 폭력에서 보호한다는 홈페이지상 설립 목적은 물론 근사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세계경제포럼(WEF)의 성 격차 순위는 92위(2006년)에서 116위(2016년)로 계속 떨어지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청소년 행복지수 역시 2009년 첫 조사 이후 만년 최하위를 맴돌고 있다. 잔혹성이 더해가는 아동학대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오해 마시길. 여가부가 손 놓고 놀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최근 보도자료만 훑어봐도 ‘청소년 음주·흡연 예방은 즐거운 힙합과 함께’ 하라며 랩·힙합 공모전을 열었고,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성매매 수요 차단부터’라는 정책포럼도 개최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 내 성폭력 예방 세미나’를 개최해 “대학 성적 조회나 수강 신청 시 폭력예방교육 필수화해야”라는 참신한 주장까지 내놓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게임업계는 관련 산업이 죽는다고 아우성쳤지만 청소년보호법을 들이대며 강제 게임 셧다운제를 강행했고, 청소년 특수콘돔 구매 금지와 같은 생활 속을 파고든 규제도 여럿 내놓았다. 문제는 여가부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 우리 삶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는 점이다.

어디 여가부뿐일까. 많은 정부부처가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열심히 규제를 만든다. 최근 불거진 부산 엘시티(LCT) 문제처럼 온갖 비리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규제를 먹고산다.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 역시 크게 보면 다르지 않다. 민간에 맡기면 될 일까지 정부가 나서면서 정권 말 비리로 이어졌다. 전부 규제 만능 큰 정부의 폐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엔 ‘앵그리 화이트’뿐 아니라 규제 철폐와 작은 정부라는 경제 공약도 한몫했다. 트럼프도 하겠다는 걸 우리는 왜 못하는 걸까.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