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백인 노동자들의 어리석은 선택일 뿐이라고?

중앙일보

입력 2016.11.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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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정애 런던특파원

고정애 런던특파원

세 학자가 빈집을 관찰하고 있었다. 두 명이 들어가더니 곧 세 명이 나왔다. “측정 오류가 있었던 게 틀림없어”(물리학자), “아냐, 출산한 게 분명해”(생물학자)란 주장에 수학자가 반박했다. “한 사람이 더 들어가면 다시 빈집이 될 거야.” 각자 해석이다. 수학자의 경우엔 2에서 3을 뺐으니 -1이며 여기에 1(한 사람)을 더하면 다시 0이 된다는 인식이었다. 프레임,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틀은 이토록 강력하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이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두고 “교육받지 않은 백인 노동계급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걸 봤다.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더 있다.

 프레임을 바꾸자. 보스턴 사람들 얘기다. 하버드대가 있는 미 동부의 잘나가는 도시가 아닌, 잉글랜드 중부 해안가 마을이다.

 “눈 감고 있으면 들리는 말이라곤 온통 동유럽어다.”

 “걷다 보면 나만 영국인이다. 두렵다.”

 10년 사이 인구가 20% 늘었는데 대부분 동유럽 출신이다. 학교에서 사용되는 언어만 15개다. 학교·병원 등 공공시설은 미어터진다. 임대료는 치솟고 인건비는 정체다. “누구나 일하지만 누구도 돈을 못 번다”고 여긴다. 이곳 주민의 75.6%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영국 내 최고다. 이들은 진심으로 “나라를 돌려받고 싶다”고 말한다. 트럼프를 지지한 플로리다도, 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도 비슷한 심리일 게다. ‘세계화·양극화의 그늘’이란 상투어는 현실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에겐 일상적 고통·분노·박탈감이다.

 정치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6년 전 “이런 추세를 되돌리기 위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미국 정치의 단층선이 정치가와 강력한 브로커들, 비즈니스 리더와 월스트리트, 주류 언론으로 구성된 기득권과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들로부터 나라를 되찾기로 결심한 민중으로 분열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극단적 성향의 당이 대세를 잡을 것”(『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이라고 경고했다. 민중에 의해 등장한 대안이 기득권층에겐 ‘최악’일 거라고도 했다. 바로 트럼프다.

 이후는 예상 가능한 행로다. 막연한 변화에의 기대와 분명한 결과에의 실망 사이를 오가는 정치적 불모 상태 말이다. 그러므로 선택을 힐난할 때가 아니라, 이해하고 행동할 때다. 앵글로색슨인들의 변덕으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우리도 진행형일 수 있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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