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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문학

그래도 살자고, 작가가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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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첫 소설집 『새가 되었네』(1996)를 낸 지 딱 20년이 되는 해에 성석제가 새 소설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를 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그것도 한 20년 정도를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소설 ‘블랙박스’가 맨 앞에 실려 있다.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만은 싫다고 말하는 이가 많은데, 하물며 소설 애독자도 아닌 분들이 소설가의 삶 따위를 궁금해할 리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소설가’라는 말은 지우고, 그냥 ‘산다는 것, 그것도 한 20년 정도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도 잠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성석제 『믜리도 괴리도 업시』

소설가인 나는 블랙박스를 사러 갔다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점원을 만난다. 인터넷 검색으로 내가 소설가임을 뒤늦게 알게 된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못 이겨 나는 호형호제 하는 정도의 친분을 허락한다. 실은 마감을 앞두고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하던 차에 그로부터 이야기 하나를 뽑아낼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있었던 터였다. 알고 보니 그는 꽤 거칠고 험한 삶을 살아온 사내여서 이야깃거리를 풍부하게 갖고 있는 데다 한때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던 지라 나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그가 어느새 나의 건강과 살림까지도 세세하게 챙기는 것을 나는 내버려 둔다.

한국 문단의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소설가 성석제. 참과 거짓, 상상과 실제의 경계를 넘나든다. [중앙포토]

한국 문단의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소설가 성석제. 참과 거짓, 상상과 실제의 경계를 넘나든다. [중앙포토]

그가 제공한 소재로 소설을 쓰다 탈진하고 깨어나 보니 내가 미처 못 다 쓴 뒷부분을 그가 천부적이다 싶은 재능으로 완성해 놓은 것을 발견하고 나는 놀란다. 밑천과 역량이 고갈된 상태였던 나는 아예 그와 공동작업을 시도하고 나중에는 급기야 그의 초고를 퇴고만 하여 발표하는 지경에 이른다. 은근히 기세등등해져 이제 거액이 걸린 장편 공모에 도전하자는 그에게 내가 작가적 자존심과 직업윤리를 들먹이며 제동을 걸자 그는 둘의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모든 소설을 알아서 쓸 테니 당신은 이름만 여기 내려놓고 사라지라고 겁박한다.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으로 파멸하는 예술가의 이야기? 그런데 결말이 어리둥절하다. 그에 의해 내가 쫓겨나며 끝나는가 했더니 오히려 그래서 내가 그를 죽여야만 했다는 고백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네가 죽고 난 뒤 나는 새롭게 불태울 숲을 찾는 화전민처럼 동네를 옮겼다.” 나와 이름이 같은 그는, 작가인 내가 막다른 골목에서 필사적으로 찾아낸, 내 안의 또 다른 나였던 것. 소설가는 끊임없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내야 하고 그에게 펜을 맡겨야 한다는 것, 그러다 그가 긴장을 잃고 타락하려 하면 그를 죽이고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

돌이켜 보면 블랙박스를 살 때부터 예정된 결말이었다. 소설가의 삶이란, 블랙박스에 찍힌 자신처럼 낯설고 신선한 나, 그런 나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착취하고, 떠나는 삶인 것이다. 그러나 이 화전민 같은 삶이 소설가만의 것일까. 도저히 더는 못 살겠다고 말하는 나를, 그럼에도 살아보자고 말하는 다른 나가 설득하며 살아가는 것이 모두의 삶 아닌가. 그 다른 나가 기진맥진하면 거기서 또 다른 나를 쥐어짜내며 그렇게 우리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나도, 당신도, 이 나라도. “이 시대에도, 이 더러운 역사 속에서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 이 책의 다른 소설에서 성석제는 이렇게 말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