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기능 회복이 절실하다|2·12 총선 2주…그때의 충격과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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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의의 바람이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2·12총선 두 돌을 맞았다. 여야정계에나, 심지어 투표에 임했던 국민들에게까지 의외의 결과로 비쳤고 그 때문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받아들여졌었던 2·12 총선의 충격이, 그러나 이제 와서 굴절되고 변형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들이 안타깝게도 널리 퍼지고 있는 것 같다.
11대 국회와 같은 순치된 정치질서를 유지하려고 했었던 여권은 2· 12 총선에서 그들이 노렸던 작위적인 정치구도가 붕괴되는 당혹스런 상황에 직면해야 했었다. 당시만 해도 자신감을 그렇게 갖지 못했던 야당은 그들에 대한 국민의 엄청난 기대를 실감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나타난 정치의 양상은 이 같은 민의를 여야 다같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대결과 투쟁 쪽으로만 치달았던 게 아닌가 싶다.
총선직후 여야 모두 민의를 바탕으로 한「민주화」를 부르짖었다. 야당은 그 민주화가 곧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국민의 원망을 실현하는 것으로 직결시켰고, 여당쪽도 제도의 개선과 자기쇄신 등을 내세워 「민주화」를 내걸었다.
다같이 민주화를 내걸었음에도 국회개원 협상에 무려40일이 걸려야 했다.
정부·여당이 호헌에서 개헌으로 돌아서기까지 1년 이상의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 ,직선제개헌 추진대회 등 장외투쟁이 계속됐었다.
경찰이 야당 당사를 봉쇄하고 의원들을 연금하는 등 법치를 앞세운 공권력행사가 정치를 대행하기도 했었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원색적인 발언으로 여야가 맞고함을 지르고 듣기 거북스런 품위 없는 말들이 의사당을 횡행하기가 일쑤였다.
두 번의 예산통과는 모두 여당 단독처리라는 변칙수법으로 통과되고 그 바람에 정기국회는 모두 마지막에는 야당이 불참하는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국회의원의 체포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 1천여명의 전경이 의사당에 투입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고 용공좌경을 둘러싼 논쟁이 의사당 안까지 넘쳐 들어오기도 했다.
갈등을 해소하는 기술이 정치라고 했다. 그러나 이 2년 간의 정치는 그 갈등의 폭을 더욱 심화시키고 해결의 길을 더욱 멀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정치의 기능저하만 탓하도록 만들고 있다.
여당은 「진정한 민주화」를 고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직된 권내 정치방식에 묶여 폭넓은 정치구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화와 협상을 앞세우지만 그것이 조금만 교착상태에 빠지면 「힘의 논리」가 전면에 나섰던 게 여당의 정치방식이었다. 야당의 행태에 대한 끈질긴 불신이 깊숙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지만 국민을 의식하는 정치에 덜 익숙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당 역시 2· 12 총선 부담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들의 승리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고 믿어온 재야· 학생들의 영향속에 정치기능의 회복에 야당 측이 과연 성실했는가 자문해야할 여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가 보여준 정치가 모두 국민전체의 바람과 기대 ,지지에 바탕을 두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자신있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어있질 않다는 말이다.
아마 2· 12 총선에서 가장 유의했어야 할 대목은 그동안의 경제· 사회발전과 함께 높아진 국민의 정치의식수준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양화되고 높아진 정치의식, 두터워진 국민계층의 지지를 대변하는 정치가 과연 이뤄지고 있느냐는 문제를 정치인들은 곰곰 생각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제 88년 2월의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1년 남짓 남기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대통령 직선제와 내각책임제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개헌정국의 긴 터널 끝이 보일 징조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치 행태로만 본다면 여야의 정치기술이 타협적 결실을 볼 수 있을는지는 지극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년과 같은 정치 행태가 계속된다면 그러한 정치에 대한 식상이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니 정치판 자체에 대한 회의로 번지지 말란 법이 없다.
만약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정치가 제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 충격 흡수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 후에 올 상황에 대한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의 기능회복이 새삼 절실해지는 시기에 우리는 와있는 것 같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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