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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가까이 있군요 ‘은빛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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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즐기기 좋은 서울

단풍을 보고 낙엽을 밟고 억새를 몸에 스쳐가며, 가을을 누리는 길이 서울에도 있다. 지금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의 하늘공원엔 억새가 한창이다. 억새밭 안길에선 고층 빌딩 하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은빛 억새만이 가을하늘 아래 춤춘다.

단풍을 보고 낙엽을 밟고 억새를 몸에 스쳐가며, 가을을 누리는 길이 서울에도 있다. 지금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의 하늘공원엔 억새가 한창이다. 억새밭 안길에선 고층 빌딩 하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은빛 억새만이 가을하늘 아래 춤춘다.

대한민국은 해마다 요란하게 가을을 난다. 대여섯 시간은 길에서 버릴 각오를 하고 기꺼이 길을 떠난다. 그러나 가을 여행은 유쾌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단풍 명소마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올 가을은 강원도 양양 설악산 망경대 구간(오색약수터 ~ 망경대 ~ 용소폭포)이 46년 만에 개방되면서 일대가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설악산 국립공원 사무소에 따르면 10월 한 달 동안만 약 16만5000명이 망경대 구간을 걸었다. 탐방객 대부분이 1시간이면 완주하는 길을 3~4시간이나 걸려 걸었다고 한다.

가을이면 설악산·내장산 등 단풍으로 이름난 산에는 놀이공원처럼 긴 줄이 늘어선다. 앞사람과 다닥다닥 붙어 산에 오르는 바람에 단풍놀이는커녕 앞사람 등산복만 구경하다 돌아왔다는 푸념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방법이 없을까? 정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서울의 가을을 즐기면 된다. 서울에는 크고 작은 산이 60개가 넘는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이 내사산(內四山·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기준으로 세워졌고, 도성 밖으로는 외사산(外四山·북한산, 용마산, 관악산, 덕양산)이 수도를 방어하는 외벽 역할을 했다. 따져 보면 서울처럼 많은 산을 거느린 도시도 없다.

이뿐이 아니다. 동(洞)마다 소박한 산책로를 품은 시민공원을 1곳 이상은 거느리고, 1970년대 강남을 개발하면서 지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수령 30∼40년의 키다리 은행나무가 도열해 있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어서 우리가 지나치고 살았을 뿐이다. 서울은 가을을 즐기기에 좋은 도시다. 아니 여행지다.

마침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이 달의 추천길’의 11월 주제가 ‘가을에 걷기 좋은 서울 걷기여행길’이다. 추천길 10곳 중에서 한양도성길 백사실계곡 산책로, 북악하늘길, 마포난지생명길, 북한산둘레길 21코스 우이령길 등 4개 길을 걸었다. 하나같이 가깝고 익숙한 곳이라는 이유로 평가가 박했던 단풍길과 낙엽길이다.

한양도성길 아래에 있는 백사실계곡 산책길은 유서 깊은 단풍 명소다. 추사 김정희(1786~1856)도 백사실계곡에 들어 풍류를 즐겼다. 반면에 북악하늘길에는 가슴 아픈 현대사가 어려 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가 서울에 침투했던 1·21사태 이후 41년 동안 출입이 금지됐던 산길이다. ‘김신조 루트’로 더 알려져 있다.

북한산둘레길 21코스 우이령길은 북한산 자락에서 단풍 예쁘기로 손꼽는 고갯길이다. 탐방객을 하루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여유를 부리며 북한산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마포난지생명길은 인공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생태공원으로 변신한 난지도 하늘공원은 온통 억새밭이다.

이곳 말고도 서울에는 가을날 걷기 좋은 길이 수두룩하다. 막 걸음마를 뗀 아이와 함께라면 토성산성어울길 1코스와 동작충효길이 좋겠다. 각각 올림픽공원과 국립서울현충원을 지나는데, 두 길 모두 유모차도 다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서울에는 고층빌딩을 시야에서 지운 단풍·낙엽길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잠깐만 짬을 내면 즐길 수 있어 부담도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천국은 늘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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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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