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관리 기업의 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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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실기업의 문제는 덮어두면 둘수록, 편법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면 할수록 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이 간단한 사리는 근 20여년 가까운 그동안의 경험으로 모두가 알만큼 알게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공정하고 납득할만한 정리의 원칙을 만들고, 그에 따라 구제할 것은 구제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는 과단성을 발휘해야할 때다.
그것만이 그동안의 얼버무림과 책임회피를 대상하는 길이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민부담을 더 이상 늘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정부는 지난해 또 56의 부실기업을 정리한바 있으나 아직도 1백50여개의 부실기업이 법정관리나 은행의 직·간접관리에 들어가 있다고 보도되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 많은 부실기업 외에도 해외건설이나 해운업에서 더 심각한 부실이 현재도 진전되고 있는 점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 많은 부실기업의 원천적 인과관계를 따질 겨를도 없어 보일 만큼 상태는 심각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정리단계에 들어가 있는 이른바 법정 또는 은행관리 부실업체들이 거의 대부분 재무구조가 날이 갈수록 더 나빠지고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사태는 관리부실의 탓도 크겠지만 정리의 방향이나 관리의 방식이 잘못된 탓도 클 것이다.
법정 또는 은행관리의 기본취지가 부실의 회생과 경영 정상화에 있는데도 거의 대부분 경영악화와 부채증가로 나타난다는 것은 관리불능의 전망 없는 부실까지 끌어들인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애당초 정리방향이 잘못된 탓이다. 부실의 실태파악이 제대로 안된 상대에서 ,원칙없이 관리에 들어가거나 회생가망 없는 기업을 책임회피의 수단으로 방치해둠으로써 이런 결과가 생긴다.
따라서 우선 필요한 것은 부실의 현황을 체대로 실사하고 ,객관적으로 평가 분류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회생의 가망이나 정상화의 빌미가 보이는 부실과 그렇지 못한 부실을 엄격히 가려내어 관리와 지원은 전자의 가망 있는 기업으로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선별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책임회피만으로는 문제의 근본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런 선별과 판단에는 정부와 은행, 금융감독기관들이 함께 모여 판단의 기준을 먼저 만들어야 하겠지만 ,l차적 판단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거래은행들의 책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은행이 관장하지 않는 법정관리 부실기업들의 경영악화가 두드러지는 점에 비추어 이 부문의 과감한 정리와 채권회수가 있어야할 것이다.
은행이 관리하는 부실 기업들도 무한정 구제금융만 지속하지말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단계적 정리와 정상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정관리나 은행관리, 심지어 그의 해제과정까지도 어떤 형태의 특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공정성·객관성의 유지도 결국은 금융의 자율과 책임경영아래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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