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함과 아쉬움|정태정 <서울 개봉 3동 352의7 10통2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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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엄마, 이젠 외가에 가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어요.』
『왜 외가에 가면 신난다면서?』
『전에는 그랬는데‥‥. 이젠 나무도 새도 잉어도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사를 했으니 없어지는건 당연하지. 대신 살기 편하고 따뜻하고 먼저 집보다 좋은점도 많찮아·』
『바로 그거예요. 살기 편하다고 그 많던 나무를 모두 버릴수 있다니…·.』
작년 외할머니 생신때도 시무룩한 얼굴을 하던 현이가 올해 세배를 다녀온후 내게 한말이다.
어머니 생신이 앵두 익을 무렵이라 생신때 가면 늘 빨갛게 익은 앵두를 한 바구니씩 안겨주어 실컷 먹고나서도 앵두주까지 담글수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무렵 1년반정도 시골에서 살때의 일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며 지금도 다시 그곳으로 내려가 살고 싶다고 말하는 5학년짜리 현이·
시골은 아니지만 외가에 가면 나무가 많고 나무뒤엔 새집이 있어 새가 드나들며 연못에선 잉어가 헤엄치고‥‥,그래서 좋아하던 아이.
그런데 지금은 까마득히 높은 고층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외가.
그러고 보면 편하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른 것을 잃고 있는 것일까·
내가 몇십리 길을 걸어서 등하교하던 때의 좋은점을 얘기하는 나에게 『언제 한가하게 걸어 다녀요. 그럴시간 있으면 공부나 하겠어요』하고 대꾸하던 어떤 여학생의 말. 마치 나를 경쟁사회에서 도태된 구시대적 낭만주의자 쯤으로 치부하던 것이었다·
빨라지고 편해진 세상. 보다 편하게 살기 위하여 너나없이 바쁜 요즘 사람들이 멋이 없고 삭막해진게 아니라 내가 뒤떨어지고 있는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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