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는 외롭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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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곳곳에 하얗게 쌓인 눈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관악산 봉우리들이 창밖에 둘러섰다.
17일하오 박종철군(21·언어학과3)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 언어학과 사무실. 피어오르는향내음사이로 흐느끼는목소리의 조사가 애잔하게 흘러 나왔다.
박군과 평소에 가까왔던 친구 김모군(21·국문3) .박군의 영정앞에 엎드려 밤을 새워 쓴 긴긴 영결의 편지를 읽고 있다.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한 신체가 필요하다며 아침마다 평행봉을 하던 네가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다니…』
김군이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가누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자 주위에 둘러섰던 20여명의 과우·친구들도 한꺼번에 통곡한다.
15평 남짓한 과사무실의 한편에 마련된 박군의 제단위엔 한떨기 국화조차 보이지않았다.영정마저 증명사진을 확대븍사해 더욱 초라한 모습. 그러나 빈소를 찾는 교우·동문선배들의 발길은 줄을 이어 박군의 영혼이 결코 외롭지만은 않아보였다.
조사낭독이 끝났다. 소주 한잔을 따라 영전에 올려놓고 친구들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어두운 죽음의 시대/내친구는 굵은 눈물 흘리며/역사가 부른다/멀고 험한 길을 북소리 울리며 멀어져 간다…』
『친구Ⅱ』 합창은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이제까지 부끄럽게 살아온 내가 너의 죽음앞에 새롭게 태어났음을 기쁘게 지켜봐다오. 이제 네가 못다 이룬 일, 뒤에 남은 우리가 하리니 고이 잠들길…』
조사의 마지막 귀절이 귓전에 여운으로 맴돌았다. <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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