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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한국 노조도 글로벌 스탠다드 수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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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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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개방화와 글로벌화는 강한 선진 국가로 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세계 흐름에 맞추어 스스로 내부 개혁을 이뤄내면 국제 경쟁력을 키우게 되지만 변화를 거부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수구적 패러다임으로는 버티면 버틸수록 자생력마저 빼앗기게 된다.

경제개방 선진국 대열 진입했는데
국내 노사관계 30년 전 틀에 갇혀
외국선 고용 보장 대신 임금 양보
세계 시장변화 능동적으로 수용을

국가와 마찬가지로 각 분야의 정부정책과 시장질서에 있어서도 개방화와 글로벌화가 국제경쟁력과 직결되어 있다. 그간 한국의 경제와 산업은 1987년 GATT(현 WTO) 가입과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체제 동참 그리고 수많은 국가들과의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한 개방체제를 수용하면서 전반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정도로 발전해 왔다. 제조업 분야는 거의 완전 개방수준이며 자본·해운 등 서비스 분야는 아직 뒤져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30여년 전 패러다임에 갇혀 세계적인 변화의 추세에 눈감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노사관계이다.

한국 노조는 1987년 6·29선언에 따른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진 노동친화적인 노사관계의 틀을 그대로 지키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기보호 수단과 힘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비추어 볼 때는 가장 후진적인 모습이어서 한국의 경제 역량과 산업 경쟁력을 깎아먹는 핵심 인자가 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한국 노동시장 효율성 항목은 77위, 노사간 협력 항목은 135위 등 노사관계 분야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자동차 제조 산업은 대규모 조립 산업으로서 종사 근로자들의 규모가 크고 일하는 방식에 따라 생산성이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신차 개발에만 3~4년이 걸리면서도 급변하는 수요시장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노사관계의 중장기적 안정성과 근로 형태의 유연성이 중요한 경쟁력 요소다.

이에 따라 지난 30여년간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미국·독일·일본·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주요 자동차 생산국들과 주요 자동차 기업들의 노사관계는 모두 협력적, 공생적 관계로 변했는데 한국 자동차산업 노사관계만 여전히 대립적, 투쟁적, 갈등적, 이기적 태도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반복적으로 수개월간 임금투쟁을 전개해 3~5%씩 꼬박꼬박 임금을 올리고 있고, 복지 혜택은 세계 최고 수준을 누리면서도 어떠한 근무 유연성이나 성과제 도입은 거부하고 있어 임금 수준은 가장 높은 반면 생산성은 가장 낮은 자동차 공장이 돼버렸다.

외국의 경쟁사들은 회사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임금을 양보하면서 생산물량과 경쟁력을 지켜나가고 있는데 메이드인 코리아 자동차는 점점 줄어들고 국내 메이커들마저 신규 차종 물량과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해 감에 따라 국내시장은 잠식당하고 고용은 감소하고 지역경제마저 어두워지고 있다. 완성차의 임금이 올라가면서 2차, 3차 계열 회사들과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이에 따른 부품회사들의 수익성 하락과 인력 이탈로 산업 생태계마저 취약해지고 있다.

올해같이 세계자동차 시장이 어려운 여건에 있음에도 장기간 파업을 감행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공장을 정지시키는 적극적 파업행위가 정당화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대체근로는 불법화 돼 있는 나라는 경쟁국 중 한국 뿐이다. 파견제가 금지되고 하도급제가 한국처럼 엄격히 금지되는 나라도 없다. 한국 노사관계가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30년 구형 패러다임에 따라 노조의 지배적 힘에 좌우되는 한 한국의 경쟁력은 쇠락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노조도 글로벌 개방경쟁 체제 속에서 회사와 함께 고용을 유지하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새롭게 구축하는데 협조해야 한다. 눈앞의 자기이익만을 지킬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변화를 수용해 자신들도 잘되고 청년들에게 희망도 주며 지역경제도 발전시키는 애국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 한국 제조업의 부활 자체가 노조의 변화에 달려있다. 그렇지 않으면 강경한 노조로 인해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철수하고 있는 호주의 사례나, 모든 조선소가 한국에 밀려 문을 닫았던 스웨덴 말뫼의 눈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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