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강한 당신] 당뇨병 유병률 14%로 사상 최고…환자 77%가 관리 안 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기사 이미지

한국인의 당뇨병 증가 추세가 심상치 않다. 대한당뇨병학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거주하는 30대 이상 당뇨병 유병률은 13.7%로 사상 최고였다. 종전의 최고 기록은 12.4%였다. 그뿐 아니라 당뇨병 전 단계 유병률, 당뇨병 조절률을 비롯한 대부분의 통계에서 역대 최악의 기록을 경신했다. ‘세계 당뇨병의 날’(11월 14일)을 앞두고 날로 심각해지는 당뇨병의 실태를 짚어봤다.

젊은 남성 ‘뚱뚱한 당뇨병’ 비상

유병률이 역대 최고인 13.7%로 나타난 건 우선 당뇨병 진단 기준이 강화돼서다.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대중(대한당뇨병학회 홍보이사) 교수는 “전 세계 흐름에 맞춰 이번 조사부터 공복혈당(126㎎/dL 이상)뿐 아니라 당화혈색소(6.5% 이상)까지 기준에 추가해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당뇨병으로 진단했다. 그 결과 유병률이 1%포인트쯤 더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혈당은 식사 여부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 공복 시 측정한 혈당을 기준으로 당뇨병을 진단하면 정확성이 떨어진다. 공복혈당은 정상이라도 실제 당뇨병인 환자가 적지 않다. 이런 환자들이 이번 통계에서 포함된 것이다. 그보다 당뇨병학회에서 주목하는 건 ‘비만’이다. 김대중 교수는 “당뇨병 유병률이 계속 높아지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비만도가 상승하는 게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젊은 남성의 복부비만, 당뇨병 환자 급증

3년 전과 비교할 때 당뇨병 환자의 비만율(체질량지수 25㎏/㎡ 이상)은 4.2%포인트(44.4%→48.6%) 높아졌다. 복부비만(허리둘레 남성 90㎝, 여성 85㎝ 이상) 비율은 50.4%에서 58.9%로 올라갔다. 비만은 남성에게서 두드러졌다. 체질량지수 기준 37.1%에 불과하던 남성 비만 당뇨병 환자는 3년 새 48.1%까지 늘었다. 복부비만 역시 42.1%에서 61.2%로 높아졌다. 반면에 같은 기간 중 여성의 비만은 51.8%→49.4%, 복부비만은 58.8%→55.9%로 각각 떨어졌다.

비만은 잠재적 당뇨병 환자로 불리는 ‘당뇨병 전 단계’에 더 큰 위협이 됐다. 당뇨병 전 단계 유병률은 같은 기간 19.3%에서 24.8%로 높아졌다. 예전엔 5명 중 1명이 당뇨병 ‘고위험군’이었다면 지금은 4명 중 1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심지어 당뇨병 전 단계의 경우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게 학회 측의 설명이다. 예전과 똑같은 기준으로 조사했는데도 당뇨병 유병률에 비해 훨씬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비만을 동반한 당뇨병 환자가 많아지자 당뇨병 체질도 바뀌었다. 예전엔 이른바 ‘마른 당뇨병’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최근엔 뚱뚱한 당뇨병이 더 많다. 둘은 원인이 완전히 다르다. 마른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적게 분비돼 발생한다. 뚱뚱한 당뇨병은 인슐린 자체의 성능이 떨어지는 게 원인이다. 당연히 치료법도 다르다. 김대중 교수는 “특히 젊은 사람 중에서 배 나오고 뚱뚱한 당뇨병이 늘었다”며 “이럴 경우 약 복용은 물론 체중 감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당뇨병 관리 안 되는 이유는

당뇨병 환자는 늘었지만 관리 수준은 예전보다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병에선 인지율·치료율·조절률 이 세 가지 개념이 중요하다. 스스로 당뇨병인지를 아는 게 인지율이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시도하는 게 치료율이다. 조절률은 당뇨병 수치가 얼마나 정상적으로 조절되는지를 보여준다. 인지율은 3년 전과 비교해 71%에서 70.2%로 조금 낮아지고, 치료율은 89%에서 90.1%로 높아졌다. 그런데 조절률은 27.9%에서 23.3%로 크게 낮아졌다. 건강검진을 통해 당뇨병이 있는 걸 발견하고 병원을 찾는 것까지는 잘 하지만, 정작 자기 병을 제대로 관리하는 환자는 줄었다는 의미다. 처방받은 약을 잘 먹지 않았을 수도 있고 생활습관이 여전히 나쁠 수도 있다.

당뇨병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이유는 인식 부족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질환이 아니라 진단 후에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려면 당뇨병 관리 교육이 매우 중요한데, 환자는 교육을 받으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의사는 여건이 안 된다는 문제가 있다. 김대중 교수는 “당뇨병을 진단받으면 환자는 준(準) 전문가가 돼 온갖 정보를 찾는다. 이 중에는 잘못된 정보가 많고, 설혹 옳다고 해도 자신에게 알맞지 않을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이어 “3분 진료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상 의사 역시 환자를 적극적으로 교육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토로했다.

인슐린 치료에 대한 거부감도 원인 중 하나다. 당뇨병을 10년 이상 앓으면 약으로 조절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 이땐 인슐린 주사가 필수다. 그러나 많은 환자가 주사 맞기를 거부한다. 국내 인슐린 치료율은 8.9% 수준으로 미국(30.8%), 일본(33.9%)보다 턱없이 낮다. 주사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 인식, 통증에 대한 두려움, 번거로움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예전엔 바늘이 두껍고 길어 통증이 심했지만 최근엔 바늘이 3㎜ 이하로 가늘어져 혈당 측정 침보다 통증이 덜하다”고 말했다. 기존 주사는 하루 한 번, 많으면 네 번까지 맞아야 했지만, 최근엔 1주일에 한 번만 맞아도 되는 주사도 보급돼 있다. 임수 교수는 “진짜 문제는 사회적인 분위기다. 외국에선 야외에서 배를 드러내고 주사를 놔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화장실이나 골방에 숨어서 맞는다”고 지적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