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해의 소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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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희망에 찬 새해의 아침이 밝았다. 사찰이 많은 이곳 점촌의 흥덕동. 어디서인가 울리는 제야의 범종 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1년 범해의 잘한일, 못한일, 못다한 일들을 반추하며 새해의 설계를 세운지도 벌써 열흘이 흘러갔다.
나는 두손 모아 눈감고 나의 이 자그마한 지붕밑 공간에 땀흘린 만큼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빌었다.
돌이켜 지난한해 내가 밟아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니 한마디로 산정상을 향해서 위만 올려다 보고달리고 기고 걷고 미끄러지며 살아온것 같다. 밟고싶던 산정을 바로 눈 앞에 두고서도 그동안의 등산도 헛되이 다시 출발점에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잘된 일로 향한 박수갈채보다는 잘못된 일들을 향한 질타소리에 가슴아파했던적이 더욱 많았다.
그러나 새해부터는 마음의 허리띠를 더 실하게 매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기슭의 준비부터 근검절약을 기반으로 쓸데없이 씀씀이만 더 커지는 것을 막는 살림의 솜씨를 정성으로 갈고 닦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난해는 친정 할머님이 오랜 병고 끝에 타계하셨고 우리가정의 숙원이었던 내집 마련이 결혼10년만에 이루어지는 등 크고 작은 길흉사 때문에 가족들의 작은 소망들은 하나둘씩 뒤로 밀려 지금 자기차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그러한 소망들을 하나하나 이루도록 계절 따라 계획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랴. 할아버지 「미수」되시는 생신과 동갑이신 부모님 회갑이 늦은봄, 초 여름이기에또 내년으로 밀려나는 소망들이 생길 것 같다.
그래도 3남매아이들이 국민학교 3학년·1학년,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도록 컸으니 감사할 뿐. 그들은 엄마의 근검정신의 상징인 몽당연필은 싫어할 것인즉 면학의 길을 더 흥미롭게 걷게 해주기 위해서는 엄마 쪽의 소비를 더욱 줄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 이제부터는 행동 개시! 토끼처럼 영리하고 기동성 있게.
우선 옷을 두툼히 입고 추위 속에 나서 1년 설계도에 따라 작은 손을 알뜰히 놀리면서 거북과의 경쟁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남규옥 <경북 점촌시 흥덕동 378의 12 황재완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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