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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핵에 선제적 행동 취한다면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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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30면

1983년 KBS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역사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하던 해, 필자는 통일부 관련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라는 긴 이름을 가진 기구의 실무자로 있었다. 그로부터 꼭 20년 동안 남북 인적교류 분야의 업무를 맡았었다. 그 기구의 사무총장 직을 떠난 14년 간 유사한 사회활동 또는 북한 사회와 문학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 짧지 않은 현장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지금의 남북관계는 위험해도 너무 위험한 지경으로 접어들었다. 온 나라가 연일 국기문란 논쟁으로 시끄러워서, 그 북새통 때문에 우리가 정작 위기의식을 느끼고 주목해야 할 엄중한 국면을 놓치고 있다. 바로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국제정세의 위기다.


만약 북한이 핵 도발을 감행한다면, 아마도 북한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70년간 3대에 이르도록 이어진 김 씨 세습왕조의 권력도 찾을 길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북한의 군사력과 대척적인 지점에 서있는 미국의 힘과 공언(公言), 그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에 근거한 판단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 정권의 멸실에 있지 않다. 그러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미사일들이 어디로 향하겠느냐가 문제다. ‘서울 불바다’ 얘기는 여러 차례 들어서 감각이 무디어졌는지 몰라도, 북한이 궤멸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 얘기가 단순한 위협이나 엄포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난 21일 말레이시아에서 북미간의 극비 접촉이 포착되기도 했고 또 북한의 정보적 판단이 스스로를 극단적인 궁벽의 지경으로 몰고 가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해 본다. 하지만, 안심하고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작은 심지를 잘못 건드려 화약고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북핵을 가운데 둔 국제적 위기구조에는 그러한 위험 요소들이 너무도 즐비하다. 우선 자국 방위라는 명분을 내걸고 북한이 5차를 넘겨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그 ‘불장난’을 중단할 절제가 없고, 미국을 위시한 기존의 핵보유국들은 이 사태를 용납할 의사가 없다.


그러한 힘의 충돌이 일어나는 와중에 어떤 돌발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전으로 이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투하 이후로, 인류는 아직 핵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로부터 70년간 핵의 위력은 더욱 강화되었고 그것이 작동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 지역이 다름 아닌 한반도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핵전쟁은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절체절명의 명제를 놓고 대화와 협상을 지속하기란 참으로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다. 북한의 핵개발을 중지시키지 못할 때, 그리고 그 핵이 미국 본토를 겨냥하고 실효에 있어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을 때, 미국은 ‘행동’을 결심할 수 있다.


1945년 일본에 떨어진 폭탄 두 발이 2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으나, 일본은 전쟁을 도발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미국은 역사적 정의의 편에 서 있었다는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사상자는 무고한 민간인일 뿐이다. 최근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의 외교정책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60%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는 작년보다 5%가 높아진 수치다.


중요한 것은 미국 국민들이 북핵을 위협적인 존재로, 곧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위험한 수준으로 보기 시작하면 미국 행정부와 군부의 인식도 결국 그 평가를 뒤좇아 가게 된다는 점이다. 거기에 미국 대선 주자 진영의 북한 핵 관련 발언들은 우려를 넘어 그 자체로서 위태롭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좌충우돌 발언은 차치하고라도, 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 케인은 TV토론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임박했을 때 미국은 선제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집권할 경우 대북 강경노선의 기조를 짐작하게 하고, 미국이 체감하는 북핵의 위협이 엘리트 사회에 어떻게 확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작 애타는 것은, 이 막중한 시기에 우리가 주체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은 데다, 그에 앞장 서야할 국가 지도층이 너무 오래 또는 타성적으로 별 소용도 없는 명분싸움에 휘말려 있는 현실이다. 정권적·정파적 차원이 아니라 민족적·국가적 차원에서 조속히 전열을 가다듬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판독하며 외교적 군사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자칫 이 시대의 지도급 인사들이 후대의 역사에 무능·무치하며 국가경영에 실패한 인물로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는 까닭에서다.


북핵 문제 해법은 결국 한반도 주변 열강과의 상관성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강국이라고 해서 사안마다 힘이 강한 것은 아니다. 약소국이지만 그 국민의 단합된 의지와 완강한 실행의 힘으로 강대국을 넘어선 사례가 우리 주변에 여럿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주변 강국에 둘러싸인 스위스는 ‘정신 방위’라는 기치 아래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나치 독일의 침공 의지를 꺾었다. 1998년 3월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의 6개 섬을 두고 교전이 발생한 일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의 충돌에서 베트남은 굴하지 않았고 마침내 중국이 물러섰다.


중국에 비하면 너무 작은 나라 싱가포르 또한 남중국해에 관한 입장에서 조금도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일들은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일본이나 그 외의 열강들과 어떻게 상황을 조율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시사하는 타산지석들이다. 우리 또한 주변 강국에 위축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더 나아가 이를 발전적으로 넘어설 국민적 의지와 실효성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어쩌면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의 역학게임일 수 있기 때문에, 사안은 위험하고 대책은 시급하다.


김종회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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