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앞둔 여론 조성작업

중공에서 지난 4일 안휘성 성도 합면에서 일어난 과학기술 대 데모를 시발로 보다 폭 넓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규모 대학생 데모는 중공지도부가 내년말까지로 예정하고 있는 정치개혁의 제도적 근거 마련을 위한 정치작업으로 보인다.
안휘성의 합면에 이어 호북성의 무한, 호남성의 장사, 운남성의 곤명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대학생들의 데모는 급기야 북경과 상해로까지 번져 21일에는 상해의 7개대 7만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대회로 번졌다.
중공에서 매년 12월은 9일의 항일 학생의거 기념일이 있어 대학가가 술렁이는 데모계절이지만 올해는 대규모화한 데모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일본의 공동 통신은 76년 10년간의 문학혁명이 끝난 이래 가장 대규모의 학생데모가 일어나고 있으며 78∼79년 사이 북경대를 중심으로 번졌던 「북경의 봄」이 다시 찾아든 분위기라고 전하고 있다.
올해 학생데모는 두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첫째, 학생들의 구호에 나타난 요구가 좀더 구체적인 민주체제로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일 학생의거 기념일인 9일 합면에서 일어난 데모에서 학생들은 『민주주의 없이 근대화는 없다』는 구호를 외쳤고 12일 북경대에 나붙은 소자보(작은 벽 신문)에는 『현재 중국의 어디에서 민주적 선거가 행해지고 있는가? 우리에게 거짓 민주주의는 필요없다』『중국인민은 소수자를 위해 봉사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색깔이 짙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같은 구체적인 정치적 요구가. 학생들에 의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둘째, 주목할 것은 중공당국이 이같은 학생들의 대규모 데모와 정치적 요구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공관영 신화사 통신은 20일 중공교육 위원회의 한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 『중국시민은 데모할 권리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관리는 이 같은 학생시위에 대해 『정상적인 의사표현』이라며 『대학생들은 정치조직의 재건에 관심을 가져야하며 이런 쟁점에서 견해를 표명해야 한다』고 말해 학생시위가 정치개혁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상당히 선동적인 인상까지 풍기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15일자 중공 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사설에서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사설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보통선거가 부르좌 국가만의 개념이 아니며 중국이 후진성을 극복하려면 서방선진국에서 발전해 온 이 같은 인류의 문화업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공의 최고실력자 등소평도 이 사설이 나온 직후 중공이 10년 안에 정치개혁을 끝낼 것이고 그럴 경우 보통 선거제가 도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했다. 공산당원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지도자를 뽑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개혁의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높아지고 있는 때에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데모가 중공당국의 「묵인」아래 대규모로 일어나는 것은 바로 중공당국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캠페인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있다.
북경의 외교소식통들은 이 같은 관점에서 내년말까지 열리는 제13차 중공 당 대회를 지적, 이 대회에서 중공의 정치개혁에 관한 결의안을 성공적으로 채택하기 위한 사회분위기와 여론조성을 위해 사전캠페인으로 학생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특히 중공의 각 대학에는 중공당의 청년조직인 중국공산 청년단이 조직되어 있어 이 조직을 통한 캠페인이 민주화 요구 학생데모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요구는 아직은 성숙된 민주주의의식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안휘대학교의 한 학생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링컨」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내용이 담긴 포스터를 가리키며 『우리는 서방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른다. 우리는 결코 서방세계의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이들이 요구하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최근 중공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 요구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개혁에 이은 그 상부구조인 정치구조의 개혁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과도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