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의 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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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은 물을 만들고, 사람은 술을 만들었다. 사람 사는 곳에 술이 없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요즘 외국 잡지에 소개되는 사진 가운데 소련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지어 서있는 광경이 자주 보인다. 보트카를 사려는 사람들이다. 술 두 병을 사기 위해 한나절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 사람들은 내심 『자유와 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요즘은 술의 계절이다. 가끔 신문에 소개되는 술좌석의 풍속을 보면 뜻밖의 일들이 많다. 그만큼 술의 시속은 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술 마시는데 무슨 법도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서부 개척시대의 사람들은 아니다.
선현들이 주도를 찾았던 것은 단순히 유가의 규범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거기엔 그 나름의 생활철학이 있었다.
주도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있어도 술에 빠져 죽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산 바라보니/그리던 임이 온다 반가움이 이러하랴/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하노라』(고산 윤선도)
이것은 선비만의 주흥 일 수 없다. 「먼 산 바라보는 여유」는 바로 주도의 멋이요, 품격이다.
우리나라에선 주도를 주례라고 한다. 술도 예의를 갖추어 마신다는 뜻이다.
중국사람은 같은 동양인이지만 우리와는 좀 다르다. 임어당은 그의 명저 『생활의 발견』 에서 중국인이 술 마시는 태도에 관해 칭찬해야할 점과 비난받아야할 점을 지적했다.
먼저 비난받아야할 점은 그만 마시겠다는 사람에게 권커니 잣거니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일이다. 그 결과는 악취로 쓰러지는 일 뿐이다. 천천히 즐기면서 취하기를 좋아하는 서양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칭찬 받을 일은 요란스럽게 떠들며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점잖기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에겐 의외다. 임어당은 오죽하면 중국사람들이 술 마시는 광경을 축구 시합장에 비유했을까.
이런 술버릇을 칭찬하는데는 까닭이 있다. 입씨름의 소란스러움은 알콜 성분을 발산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그렇게 한시간 이상 계속되면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음식이 잘 소화된 다는 것이다.
술은 유쾌히 마셔야된다는 얘기와 통한다.
요즘 같은 술 시즌에 주도도 좀 생각해가며, 그러나 유쾌히 마시는 멋도 부려 봄직하다. 그것은 악취를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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