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물을 만들고, 사람은 술을 만들었다. 사람 사는 곳에 술이 없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요즘 외국 잡지에 소개되는 사진 가운데 소련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지어 서있는 광경이 자주 보인다. 보트카를 사려는 사람들이다. 술 두 병을 사기 위해 한나절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 사람들은 내심 『자유와 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요즘은 술의 계절이다. 가끔 신문에 소개되는 술좌석의 풍속을 보면 뜻밖의 일들이 많다. 그만큼 술의 시속은 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술 마시는데 무슨 법도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서부 개척시대의 사람들은 아니다.
선현들이 주도를 찾았던 것은 단순히 유가의 규범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거기엔 그 나름의 생활철학이 있었다.
주도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있어도 술에 빠져 죽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산 바라보니/그리던 임이 온다 반가움이 이러하랴/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하노라』(고산 윤선도)
이것은 선비만의 주흥 일 수 없다. 「먼 산 바라보는 여유」는 바로 주도의 멋이요, 품격이다.
우리나라에선 주도를 주례라고 한다. 술도 예의를 갖추어 마신다는 뜻이다.
중국사람은 같은 동양인이지만 우리와는 좀 다르다. 임어당은 그의 명저 『생활의 발견』 에서 중국인이 술 마시는 태도에 관해 칭찬해야할 점과 비난받아야할 점을 지적했다.
먼저 비난받아야할 점은 그만 마시겠다는 사람에게 권커니 잣거니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일이다. 그 결과는 악취로 쓰러지는 일 뿐이다. 천천히 즐기면서 취하기를 좋아하는 서양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칭찬 받을 일은 요란스럽게 떠들며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점잖기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에겐 의외다. 임어당은 오죽하면 중국사람들이 술 마시는 광경을 축구 시합장에 비유했을까.
이런 술버릇을 칭찬하는데는 까닭이 있다. 입씨름의 소란스러움은 알콜 성분을 발산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그렇게 한시간 이상 계속되면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음식이 잘 소화된 다는 것이다.
술은 유쾌히 마셔야된다는 얘기와 통한다.
요즘 같은 술 시즌에 주도도 좀 생각해가며, 그러나 유쾌히 마시는 멋도 부려 봄직하다. 그것은 악취를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