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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개성있는 참신한 작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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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0면

12월을 기다리며 살던 때가 있었다.
12월을 넘기기전 끝장을 봐야한다고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잡지나 아니면 신문사에 시를 보내고 그 작품이 당선되기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 12월을 기다리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의 아득한 옛날 일이다. 『문장』이 창간된 해가 1939년 2월1일이었다.
그 창간호에 시 추천 제도가 발표된 것을 보고 나도 시 추천을 받으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몇달후에 시 몇편을 보냈다. 물론 추천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보냈다. 그러나 역시 추천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문장』에 추천시인이 나오기 시작했었다. 그 추천되어 나오는 시인들의 시가 대단히 훌륭했다. 내가 쓴, 시 같지도 않은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바다와 냇물같은 차이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시를 써서 그해 12월에 꼭 추천을 받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문장』사에 시 4편을 보냈다. 그리고 12월호 『문장』이 나오기를 잔칫집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듯이 그렇게 기다렸다. 드디어 12월호 『문장』이 나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40전을 주고 『문장』을 샀다.
그러나 내 시는 추천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너무 데뷔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따지고보면 신춘문예든, 잡지 추천이든 데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겨냥한 그 대단한 정열이 소중하다.
우리나라에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 수를 헬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1년에 각 잡지며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는 사람은 수십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데뷔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나도 신춘문예에 꼭 한번 응모한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48년이 아니었던가 한다. 어느 신문에 작품을 보내고 12월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틀림없이 내 작품이 당선되었을 것 같았다. 그래 신문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기다리는 신문은 왔지만 내 시는 당선되지 않았다. 그때 나의 심정은 참으로 공허했다. 그대로 주저앉아 한없이 울고 싶었다.
그후 나는 신춘문예를 포기했지만 지금도 해마다 12월이 되고 각 신문에 신춘문예 모집기사가 나고하면 왠지 그리도 가슴이 뛴다.
작품을 보내고 12월 말일의 발표날을 기다리는 젊은 가슴들이 이 해에도 많을 것을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그분들에게 한마디의 조언을 드리고 싶다.
해마다 정초만 되면 신문에 당선작이 발표되는데 그 작품들이 참신한 신춘문예적 특성을 보이지 못한채 개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문단에 데뷔하는 방법도 옛날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지만 신춘문예가 그 나름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존속되기 위해서는 계속 새로운 작품들이 나와야 한다.
심사과정 등 제도상의 문제가 다소 있다 하더라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새로운 자세로 작품에 임하는 한,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이 꼭 당선의 영예를 차지하는한 신춘문예는 계속 화려한 데뷔 관문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믿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 흘러 다닌다고 한다. 선자의 성격에 맞도록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좀더 새롭고, 좀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하여서는 비슷한 형식, 비슷한 경향의 작품은 쓰지 말아야하고 개성이 빛나는 작품을 써야한다. 데뷔도 중요하지만 데뷔 이후의 활동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쓴 후에 응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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