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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포 회동…2분 10초만에 "상황 끝"-민정 새해 예산 기습처리 드라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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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절충>
○…민정·신민 양당 총무는 1일 낮에는 이 의장을 중개로 간접대화를 했으나 김현규 신민당 총무가 상도동을 다녀온 저녁부터 대면 접촉을 시작해 2일 새벽 결렬 확인까지 4차례의 절충을 시도.
양당 총무는 1일 밤 9시30분쯤 1층 의원자료 열람실에서 이날 처음 대면 해 상호고충을 털어놓고 절충 방안을 모색.
김 총무는△예산안을 1천억원 삭감하고 △2일의 예결위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후 노 총리를 출석시켜 「유감표명」형태의 사과를 하면 △국회를 정상 운영토록 하는데 협조하겠다고 제시. 그러나 민정 측은 어떠한 형태든 사과는 불가능하다고 맞서 결렬.
그러나 이어 밤11시 의장실에서 열린 2번째 접촉에서 이 의장이 내놓은 「2일 예산안 정상통과, 3일 총리 출석」이란 중재 안을 양측이 받아들여 3일 하루를 사회관계 대 정부 질문일정으로 잡아 민정2·신민2·국민 1명씩 질문한다는데 까지 의견 접근을 보아 내부적 승인을 얻기로 잠정합의.
이에 따라 양자는 각자 내부진영의 「재가」과정을 밟기 시작했는데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2일0시16분쯤 이춘구 사무총장 등 10여명과 함께 있던 노태우 민정당대표 위원실로 전화를 걸어 그렇게만 해준다면 협조할 수 있다고 다짐했다는 것.
다음은 노-이 전화대화의 내용을 민정당의 한 고위당직자가 밝힌 것.
▲이 신민당총재=양당 총무간에 양해된 사항을 들어주면 참여 속의 반대를 통한 정상적 예산안 처리에 협력하겠다.
▲노 민정당대표=전화로 말할게 아니라 만나서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정확하게 얘기하자
▲이 총재=총무들끼리 매듭짓도록 하면 되지, 만날 것까지야 없다.
▲당 대표=그래놓고 바깥 사람들과 얘기해서 오늘 낮에 또 식언하는게 아니냐.
▲이 총재=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
이같은 양당 대표의 전화 합의에 따라 양당 총무는 0시30분쯤 의장실에 다시 모여△예산안1천억원 삭감 △3일 대정부 질문 일정에서 총리, 내무·문공장관 상대로 민정·신민당 각3명(신민당 측 요구로 각1명씩 늘어남) ,국민 1명 질문하는 대신 △2일 상오10시 예결위, 하오 2시 본 회의를 열어 신민 측은 참여 속의 반대로 국회 정상운영에 협조키로 합의.

<민정의원 간담회>
○…새벽2시15분 신민당의 확대 간부회의에서 새로운 조건을 내 걸었다는 소식을 보고 받은 노 대표는 즉각 의원 간담회를 소집하도록 지시.
2시53분 상기된 표정으로 입장한 이한동 총무는 『현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면서 협상 과정을 설명.
이 총무는 『대표 위원과 이 신민당 총재간의 전화 통화에서 확인 된 총무 절충사항을 신민당의 확대 간부회의가 깨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면서 『이는 협상을 안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규정.
이 총무는 『예산을 국회법·의회주의 정신에 입각해 처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참았다』고 덧붙이면서 협상 실패를 선언.
이때부터 의원실은 일순 긴박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계수 조정소위가 끝나고 이어 이기곤 의사국장이 의사봉을 상의 안에 감추고 최영철 부의장· 정 위원장이 있던 대표 위원실로 들어가자 본회의 단독통과의 초읽기에 돌입.
이어 의원 간담회가 끝나고 이 의사국장과 서류봉투를 든 국회 직원들이 의원실로 입장하자 단독예결위와 단독본회의의 상황은 벌어지기 시작했고 곧 심명보 대변인은 기자들을 안으로 「초대」.

<단독통과>
○…의원실의 창문가에 놓여있던 책상을 의장석으로 대신해 장내를 잠시 정돈한 뒤 새벽3시5분 정 예결위원장이 책상에 다가가『성원이 됐으므로 예결 특위를 개의한다』고 선포.
이어 『87년 예산안상정-계수조정 소위의 심사보고는 유인물로 대체-예산안은 조정소위에서 수정한 부분은 수정한대로 기타 부분은 정부 원안대로 의결한다』고 속사포식으로 읽어 내려가면서 『이의 없으십니까』라고 묻자 민정당 의원들로부터 『없습니다』는 소리가 일제히 나왔고 정 위원장은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유리로 덮인 책상 위를 잽싸게 방망이로 3타.
이때 정 위원장이 급한 탓이었는지 산회선포를 잊고 그대로 의사봉을 넘기려하자 이 의사국장이 주의를 환기해 뒤늦게 산회를 선포. 이렇게 해서 예결위 전체회의는 개의에서 산회까지 45초가 걸린 초스피드 진행이었으며 정 위원장은 목소리가 가끔 심하게 떨리기도.
예결위가 끝난 직후부터 임시 회의장 밖에서는 뒤늦게 알고 몰려온 신민당 의원들이 『문열어라. 또 날치기냐』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오면서 회의진행 속도는 한층 빨라지기 시작.
새벽 3시6분 임시 의장석으로 나온 최영철 국회부의장은 제19차 본회의를 개의한다고 말하고 87년도 예산안 등 22개의 안건을 일괄상정,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심사보고와 제안설명은 유인물로 대체. 이어 이의 없느냐고 물었고, 이의 없다는 소리가 나오자 최 부의장은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세번쳤는데 긴장한 탓인지 의사봉을 쥔 손이 떨렸다.
이때가 3시7분10초. 예산안이 예결위 전체회의와 본 회의를 통과하는데 정확히 2분10초가 걸렸다.
최 부의장은 뒤이어 12월3∼15일까지 본회의 휴회를 가결하고 3시7분20초 산회를 선포.
이날 노태우 대표·이춘구 사무총장·정재철 정무장관·강용식 대표위원 보좌역은 회의 시작 후 입장하려다 회의장 안이 빡빡하게 차 결국 돌아갔고 이재형 의장과 윤국노 상공위원장도 불참.

<몰려온 신민 의원>
○…정 예결위원장이 『산회를 선포한다』고 선언할 때쯤 의원실에 쇄도한 신민당 의원들은 고함을 치며 출입문을 두둘겼으나 잠근 뒤에 긴 소퍼로 받쳐 놓은 출입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신순범·김현수·김득수·문정수 의원들이 발길질로 문을 부수러 했으나 요지부동.
그 동안 결국 예산안은 일사천리로 처리됐고 이후 잠시동안 민정·신민당의원들은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도둑×들아』 『쇼 그만해』 등의 야유를 교환.
이어 일부의원 및 관계자들이 밖으로 나가는 틈을 이용, 신순범·문정수·홍사덕 의원을 선두로 신민당의원들이 민정당 사무총장 부속실을 거쳐 의원실로 진입하자 당내는 여기저기서 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는 수라장으로 돌변.
신 의원이 『이게 뭐야』라고 고함을 치자 서정화 의원 등 4∼5명의 민정당 의원들이 일제히 『뭐긴 뭐야』라며 맞 고함.
이날 민정당 의원들은『들여보내』 『한심한 ×들』 등 자신 있다는 반응.
서 의원과 신민당의 문 의원이 서로 떼미는 등 도처에서 「백병전」일보직전까지의 모습을 연출.
김득수 의원(신민)이 『이게 무슨 짓들이냐 이××들…』이라고 하자 민정당의 양창식 의원이 『말조심해』라고 응수하면서 험악한 장면을 조성하기도.
그러나 이 같은 격한 분위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간간이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정의사회 통곡한다』는 등의 고성이 나왔을 뿐 수그러들었다.
결국 이기택 의원(신민)이 『헌정 강도질 한×들과 더 이상 얘기할게 없으니 가자』라고 외치는 것을 계기로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신민당 긴급확대 간부회의>
○…2일 상오0시35분. 김 총무는 의장실 총무회담에서 이 민정당 총무가 제시한 새 중재 안을 이 총재에게 보고했고 이 총재는 즉각 긴급 확대간부 회의를 소집.
그러나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고함소리가 새어나왔고 흥분한 얼굴로 나온 노승환 부총재는 『장소사용 허가를 문서로 확실히 보장받아야지 그까짓 긍정적 검토가 무슨 소용 있느냐』 『민정당은 문서로 해준 사면·복권약속도 안 지키는 정당 아니냐』고 반발.
또 회의가 끝난 후 최형우 부총재는 『이번 문제가 서울대회 저지로 생긴 것인데 이제 와서 예산1천억 운운하고 있으면 국민들이 웃지 않겠느냐』고 주장. 결국 이 총재, 김 총무의 중재 안은 동교-상도양쪽 계보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이에 앞서 의장실 쪽의 무거운 분위기와 민정당 측 조건이 나오자 이용희 의원은 동교동을 직접 방문, 협의했으나 장소사용 보장 이상의 구체적인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고 김 총무가 직접 상도동 쪽과 협의를 시도했으나 상도동 쪽에서도 신민당이 버텨 민정당이 「상습적」으로 무리수를 범하게 되면 나쁠 것 없다고 부정적 신호만 받았다는 후문.
결국 새벽 2시까지 계속된 회의는 『서울대회 장소 사용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민정당 측 중재 안을 거부.
이어 김 총무는 다시 총무접촉을 가진 후 「결렬」을 들고 새벽2시30분 확대간부 회의와 의원 간담회를 잇달아 소집.
옥내집회 수락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신순범 부총무가 『예결 소위를 해치웠단다』라고 급보를 전해 회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중단.
김 총무는 곧바로 미리 편성해 둔 조별로 행동개시를 지시. 그러나 일부 의원만 뛰어 나간 채 나머지 의원들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어물거리는 사이 김정길 의원이 뛰어 들어오며 『민정당 의원실에서 방망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고함을 쳐 분위기는 돌변, 대부분 민정당의원실 측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짜증스럽고 자괴스러워 하는 모습이었으며 지난해의 긴박했던 상황에 비해 저지 의욕도 훨씬 떨어져 보였다.
의원들은 김 총무의 작전개시 지시에도 『자 가봅시다』며 비아냥 조로 마지못해 움직이는 모습이 역력.
민정당 의원실로 돌진할 때도 『절대 폭력은 쓰지 말자』며 몸을 사리는 모습. <박보균·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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